존중과 거리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_양창순

by 서수정


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가깝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멀다고 해서 무관심해지지 않는 관계.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마음만은 진심으로 대하는 거리.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래서 관계 앞에서 늘 성실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했고, 불편함이 생겨도 먼저 이해하려 했으며, 관계가 틀어질까 봐 내 감정을 뒤로 미뤘다.
진심으로 대하면 적어도 마음만큼은 닿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삶은 자주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건넨 존중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배려가 되었고, 내가 지켜온 거리감은 어떤 이에게는 더 다가와도 된다는 신호처럼 읽혔다.
그래서 상처가 되기도 했다.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미워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문득 돌아보면 늘 내가 한 발 더 다가가 있었고, 늘 내가 조금 더 참아주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 붙잡고 있었던 문장이 있다.

" 자존감의 핵심은 나를 끊임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나는 늘 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썼다.
조금 더 이해하려 하고, 조금 더 둥글어지려 하고,
조금 더 참으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일에는 인색했다.

예민해진 나를 나무랐고, 상처받은 나를 약하다고 여겼으며, 불편함을 느끼는 나를 참지 못하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자존감은 완성된 내가 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계속 데리고 가겠다는 태도에서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죽을 때까지 나와 동행해야 하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

수많은 관계를 지나며 살겠지만 끝까지 남아 내 삶을 함께 걸어갈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장 오래 함께할 사람을
왜 이렇게 엄격하게만 대하고 있었을까.

건강한 까칠함은
사람을 밀어내는 태도가 아니다.
관계를 끊어내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그것은 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이건 불편해요.”
“여기까지가 좋아요.”
“지금은 힘들어요.”

이 말을 꺼내는 용기는 관계를 망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여전히 쉽게 마음을 닫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착한 사람으로 남기보다 나와 평화롭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한 내가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데리고 가는 삶.
죽을 때까지 함께 걸어야 할 나를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는 삶.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조금 더 나를 수용하며,
조금 더 나를 지키며,
조금 더 나와 잘 지내기 위해.

[가장 오래 함께할 나를 지키는 일, 그것이 존중의 선을 긋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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