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설명해야 하는 관계 속에서

이해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잃고 싶지 않았던 마음.

by 서수정


그녀는 언제부턴가 설명이 많아진 사람이었다.
짧게 말해도 될 것을 조금 더 덧붙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천천히 꺼내 놓았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혹시라도 기분이 상할까 봐,
혹시라도 내가 너무 차갑게 보일까 봐...

그래서 한 번 더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관계가 조금 더 부드럽게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명은 줄어들지 않았다.
말을 꺼낼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고, 대화가 끝난 뒤에는 늘 같은 생각이 남았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을까.
그녀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해서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걸까.

잠시 머뭇거리던 생각은 곧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까지 괜찮은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설명을 멈추지 못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관계가 어긋나는 것이 싫었고, 작은 오해로 멀어지는 것이 싫었고, 지금처럼 괜찮은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더 꺼내 놓았다.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그녀는 루미의 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미가 조용히 다가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머물렀다.
그 거리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느꼈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내려다보았다.
부족해서 설명했던 것이 아니라, 이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나를 더 내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더 정리하려 하기보다, 지금 막 알아차린 마음을 조금 더 느껴보고 싶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의 자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다.
지키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지키고 싶어서 애써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생각은 늦게서야 마음의 자리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번에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조금 덜 설명해 보자고.
완벽하게 이해받지 못해도, 그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해 보자고.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편해져야 하는데, 어떤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설명이 많아진다.
이제 그녀는 조금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명해야만 유지되는 관계와, 설명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관계를...

그녀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보다 편안해져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조금 덜 설명해도 괜찮은 관계를
조금 더 남겨두어도 된다고.

"계속 설명해야 하는 관계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나를 더 내어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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