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웃어넘긴 말들 뒤에서

관계를 지키려다, 나를 놓쳐버린 순간들

by 서수정

그녀는 그 자리에서 늘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뒤에야, 자신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가볍게 던진 말처럼 들렸지만 마음 한쪽이 조용히 걸리는 순간이 있었다.

웃어넘겼다.

괜찮은 척, 별일 아닌 것처럼.


그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껏 잘 이어온 관계에 작은 틈이라도 생기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넘겼다.


그 순간, 조금만 다르게 말했어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받아칠 수도 있었고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말이 진심이 되어 공기를 바꿔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저 웃는 쪽을 선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자꾸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이제야 해야 했던 말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간 대화였고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좀 아니지 않았어."

"나는 그렇게까지 들리고 싶지 않았어."


말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늦게 마음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왜 그 자리에서 멈췄는지.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난 뒤의 공기가 두려웠다는 것을.

관계가 조금 어긋날까 봐 괜찮은 척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을.


그날 밤,

그녀는 루미의 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 익숙한 고요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손에 쥔 테이크아웃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루미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살짝 날개를 펼쳐— 완전히 감싸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었다.

그 온기 속에서 말들이 천천히 풀렸다.


"나는 말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건 "약함이 아니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는 조금 늦지 않게 말해보자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남겨보자고...



"그때 말하지 못한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 잠시 멈춰 선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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