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거리 두기의 용기

너무 가까운 거리

by 서수정


그녀는 처음엔 그저 안쓰러웠다.
처음 만난 사람 치고는 너무 쉽게 마음을 내어놓는 이였다. 이야기의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이 한참을 자신의 사연으로 채워가던 그 사람. 그녀는 그 말의 결 속에서 외로움의 결을 느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자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주 만났다.
차 한잔 하자는 말이 습관이 되었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대화가 일상이 되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고, 함께 걷고, 잠시라도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듯 하루의 피로를 잊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계는 무겁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렸다.

새벽에도, 한낮에도, 그 사람은 늘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세워두고, 문자를 보내고, “지금 나와요”라며...
그럴 때마다 그녀는 괜찮다고, 곧 보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고, 마음이 점점 탁해졌다.
그래서 두 번의 약속을 거절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나 관계는 그 작은 틈에서 무너졌다.
차가운 말이 오갔고, 험담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그녀는 놀랍도록 조용히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한바탕 감정의 홍수가 지나간 후, 남겨진 건 깊은 피로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그녀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루미의 방 앞에 섰다.
문을 열자 은은한 빛이 그녀를 맞았다.
조용한 공간 안, 루미는 소파 옆 스탠드 아래에서 환히 날개를 틀고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존재만으로 그녀를 감싸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몸을 구부리고 손끝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찻물 끓는 소리와 스탠드 불빛의 온기만이 있었다.
그 빛은 놀랍도록 포근했다.

루미의 넓은 날개가 그녀의 어깨를 덮고 있는 듯했다. 말 대신, 빛과 온기가 그녀를 감쌌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공기 속에 흩어졌다.

루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세상의 어떤 말보다 따뜻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온기 속에서 자신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날 밤, 그녀는 깨달았다.
너무 가까운 거리는 마음을 소모시키고, 너무 먼 거리는 마음을 잊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관계는 결국, 따뜻한 불빛 하나쯤의 거리를 두는 일이라는 것도...
새벽녘,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루미의 방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루미의 날개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마치 괜찮다, 이제 그만 가도 돼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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