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밤
그는 그날 밤, 루미의 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 조용한 공기가 먼저 흘러나왔다.
말이 없는 공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는 그곳에 들어오자마자 조금 숨을 놓을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았다.
몸을 깊이 기대자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보다 오래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들었던 말들.
"장남이니 잘돼야 한다."
"공부 잘해야 한다."
"사회는 만만한 데가 아니다."
그 말들은 언젠가부터 '괜찮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속 벽이 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마음 한쪽이 늘 조용히 흔들리는 사람.
아무 일도 없는데도 괜히 불안했고, 잘하고 있는 순간에도 이게 맞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늘 조금 더 잘하려고 했고, 조금 더 버티려고 했으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안정되면 나아질 거라고.
그는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더 애썼다.
하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황이 나아져도, 환경이 바뀌어도 그 감정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는 점점 지쳐갔다.
불안을 없애려는 자신에게도, 계속 불안한 자신에게도.
그때였다.
루미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곁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그 날개는 무언가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밀어내고 싶던 마음을 그대로 두어도 괜찮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게 되었다.
그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편안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이건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이미 자신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었다는 것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다.
밀어내지 않아도 되었고, 억지로 괜찮아지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그는 여전히 가끔 불안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전처럼 그를 흔들어 놓지는 않았다.
이제 불안은 싸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감정이 되었다.
불안은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는 감정이다.
우리는 불안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것이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주자.
그 자리가 곧, 마음이 자라는 곳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