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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n 27. 2024

인생바지를 만나다

마음이 흐뭇해지던 날

아침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싱그러운 요양원 정원 한가운데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자랑했다.


"어머니!"

"바지 예쁘지요."


"그래 이쁘구나!"


"어머니 거도 샀는데,

윗도리도 샀어."


"아이고 좋아라"

박수를 치신다.



"형님!"

"바지 무지 편해 보여요."

"그으래!"

"동서들!  내가 다 사줄게."


그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 넷이

인생바지를 만났다.


무지 편하다.

시원하다.

마음도 흐뭇해진다.




  지난 어버이날에 옷을 사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늘 다니던 옷가게에 갔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누워만 계시기에 편하고 가볍고 시원한 옷을 사드리고 싶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옷가게에서 적당한 옷을 찾았다. 얇고 간편하니 시원한 인견에 넉넉한 고무줄바지. 좋아하시는 반짝이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가장 무난한 윗도리도 세트로 사 왔다.


  아무래도 사이즈가 클까 염려되어 입어보았다. 

'와아~'

'정말 편하다.'

8부 기장사이즈도 적당, 누워만 계시는 어머니께 딱이다. 아직까지 이런 바지(일명 몸빼 바지 비슷한 헐렁한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 좋은데...'

'내가 입은 것을 보면 더 좋아하시겠지.'

다음날 똑같은 바지를 사서 입고 요양원에 면회를 갔다. 백수를 앞둔 어머니께서 웃을 날도 많지 않은 세상, 속없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그렇다고 혼자 몸빼의 세계로 갈 순 없으니 빈말일지라도 좋아 보인다는 말에 동서들도 같이 물고 들어간다. 우린 그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들 모두 똑같은 바지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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