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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Nov 04. 2024

사브작사브작 배추김치 여섯 포기를 담갔어요

언니의 사랑으로 버무려진 김치

 올해부터는 절대로 집에서 배추를 절여서 김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여 절임배추 40킬로까지 이미 주문해 놓았고요. 그런데도 기어이 무슨 미련이 남아 시골에서 언니가 뽑아주는 배추를 덜커덕 들고 와버렸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무와 배추, 쪽파, 대파, 갓, 당근, 시금치, 아욱, 상추 등 온갖 채소들을 차가 미어지도록 싣고 왔어요. 참기름, 들기름, 언니가 주문해 준 새우젓, 고춧가루, 참깨, 아직 덜 영글어진 서리태까지도 따서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미리 담근 호박지와 갓김치도 싸줘서 들고 왔고요. 그러면서도 더 못줘서 미안해하는 언니입니다.


 날이 갈수록 두 번이나 수술한 허리로 인하여 다리는 벌어지고 점점 더 걷는 것을 힘겨워하면서도 차마 작은 농막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언니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놀이 삼아한다 면서도 가보면 빈틈없이 심어져 있는 채소들이 바지런한 주인손길이 닿았음을 금세 알 수 있지요. 언니의 그 성정을 알기에 더 이상 말릴 수도 없기에 최대한 시골도 내려가지 않고, 가져오지 않는 쪽을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가져와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언니를 또 한 번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언니가 시골에 있어서 좋아요. 새우젓도 골라서 사주고, 고춧가루, 참깨도 사줘서 믿고 먹을 수 있는 데다 염치 불고하고 호박지와 갓김치까지 조카들 틈에서 챙겨 오니 미안하면서도 고맙지요. 올해는 갓김치를 안 담갔더니 무려 3통이나 되었어요. 갓김치가 먹고 싶다며 2킬로를 주문했는데 다음날 사돈과 여수로 여행을 간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돈께서 갓김치를 사서 보내셨다네요. 3통을 나란히 놓고 맛을 보았는데 갓도 다르고 맛도 다른데 역시 언니가 준 갓김치가 내 입맛에는 딱 맞았습니다. 이래서 사 먹는 김치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재 료
배추 6 포기, 무 2개, 양파 2개,
당근 1개, 청갓 작은 1단, 배 1개, 대파 6대, 쪽파 작은 1단, 천일염 6컵, 미나리 한 줌.

* 양 념
고춧가루 5컵, 건고추 20개, 건청각한 줌, 마늘 1컵반, 생강 반컵, 사과즙 1 봉지, 새우젓 1컵반, 멸치액젓 2컵, 매실액 5스푼, 찹쌀풀 3컵, 육수(황태포, 다시마, 새우, 멸치, 디포리) 6컵, 감미료. 소금 1스푼.

 남편은 늘 힘들게 김장하지 말고 사 먹자고 합니다. 한두 번 사보았는데 처음엔 괜찮은듯하다 날이 갈수록 진이 나고 맛이 이상해져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제가 입맛이 이상해서 그런 거라니 어쩔 수 없지만 여하튼 배추 6 포기와 온갖 양념들을 다 가져왔으니 담가야겠지요. 전날 저녁에 잘라서 놓은 배추를 아침 7시에 슬그머니 일어나 6리터의 물에 천일염 3컵을 녹여 배추를 적시며 나머지 3컵을 줄기 쪽 사이사이에 뿌려 절여주었습니다. 30~40포기씩 하다 6 포기는 일도 아니네요. 무엇보다도 이 노랑배추는 고소하고 잘 무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절임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양이 작아서 큰 통들은 꺼내지도 않고 있는 그릇들로 해결하려니 개수가 많아지네요. 배추를 절였으니 우선 5가지 재료를 넣어 육수를 끓여야 합니다. 끓인 육수 4컵에 찹쌀 2컵을 불려서 풀을 쑤어서 식혀줘야 하거든요. 이제 주재료인 무 2개와 당근, 양파 1개도 채 썰어주고요. 대파는 어슷 썰기로 갓과 쪽파는 2~3센티로 잘라주었어요. 건고추는 살짝 씻어 대충 자른 후에 씨를 제거하면서 씻어주었어요. 고추씨는 동치미 담글 때 쓰려고 모아두었어요. 중간중간 배추가 잘 절여지도록 뒤집어주고 약간 절여진 후에는 2통으로 줄여서 작은 통으로 위에서 큰 통을 눌러주었어요. 그래야 좀 더 빨리 절여지거든요. 작은 통 위에는 물을 담아서 올리면 또 눌러지겠지요.


 요렇게 신경을 쓰면서 양념을 만들어 보도록 할게요. 씻어놓은 약간 불은 건고추는 육수 1컵과 배와 양파 1개씩 넣어 믹서기에 갈아서 준비하고, 청각 한 줌은 약간 불려 씻어서 다져줍니다. 없으면 안 넣으셔도 됩니다. 작년에 쓰고 남은 것이 있어서 넣었어요. 대충 준비가 된 것 같지요. 합체를 해볼까요. 갈고 다진 것들을 양념을 할 통에 모두 담고 고춧가루 3컵, 찹쌀풀 3컵, 분량의 마늘, 생강. 사과즙. 매실액, 멸치액젓, 새우젓, 감미료까지 모두 넣어주세요. 여기가 끝이 아니겠지요. 무채가 남았잖아요. 무채를 양푼에 담아 고춧가루 2컵으로 색을 입혀준 후에 위의 재료들을 부어주면 겉돌지 않고 빨가니 먹음직스러운 속재료가 되겠지요. 여기에 썰어놓은 야채들까지 몽땅 넣어 버무려서 간을 보고 배추가 절여질동안 숙성을 시켜줍니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마무리했어요. 미리 먹을 거라 짜지 않게 했답니다.


 그 사이 8시간이나 절여진 배추가 양념옷을 입기 위해 나서려면 일단 씻어야겠지요. 서너 번을 씻어서 소금기를 빼고 지저분한 꽁지도 잘라주면 노랑빛 배추공주가 납시게 됩니다. 8시간임에도 아주 푹 절여지진 않았어도 괜찮았어요. 일반배추는 이 정도면 푹 절여지니 주의하셔야겠지요. 워낙 배추가 절여지는 시간이 길어서 그 사이에 깍두기도 1통 뚝딱 해버리고 너무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하다 보니 하루가 다 가버리네요. 절인 배추가 살아나기 전에 얼른 마무리지어야겠어요. 30분 정도만 물기를 빼주고 양념이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도록 맞추어 속을 넣어주, 육수 1컵으로 통의 양념들이 남지 않도록 알뜰하게 마무리하고 나니 배가 고프네요. 배추를 씻으면서 나온 부스럭 지들을 모아 치마양지 한 덩어리와 남은 육수로 배춧국을 끓이고 배추속도 한 접시 남겨두었다가 싸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요. 이것이 행복이지 싶습니다. 다음날은 고기까지 삶아서 손자들과 푸짐하게 먹었답니다.


 그거로 끝났느냐고요. 그럴 리가요. 양념들이 모두 있다는 핑계로 총각무 5단을 사서 또 총각김치를 담갔어요. 본 김장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다해버린 것 같아요. 어쨌든 벌써 익어서 간도 딱 맞고 맛있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로 저녁밥을 또 한 그릇 비웠어요. 사브작사브작하다 보니 이틀에 걸쳐 김치 하느라 휴일이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언니의 사랑으로 또 한 계절의 먹거리들을 채우고 나니 언제까지고 언니가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한 달이 멀다 하고 대학병원진료를 올 때마다 행여 언니가 힘들까 봐 기차역에서 대기를 하다 자차로 이동하여 진료를 마치고 약을 타주고 점심을 먹고 돌아갈 때까지 동행을 해주지만 늘 아쉬워요. 그때만이라도 언니를 편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런다고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언니, 내가 언니를 얼마나 의지하고 사랑하는지 알지!. 일부터 추워진다는데 옷깃 단단히 여미시고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총각김치와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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