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긴 연재로 틈틈이 올리겠다던 요리글을 올리지 못했어요. 다음 주면 마무리될 것이기에 마음 가볍게 한 가지씩 올려볼까 합니다.
브런치스토리가 직접 글을 골라 엮는 [틈]을 가끔 본다. 이번 큐레이션 [틈]의 주제가 "먹는다는 것"이라기에 솔깃하여수저하나 얹어보기로 했다. 삶과 먹는다는 것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먹기 위해 살까, 살기 위해 먹을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난 어떨까. 어쩌면 둘 다일 지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였던 날들도 있었다. 살기 위해 옥수수, 고구마, 감자로라도 끼니를 때우고 요즘 같은 가을 녘에는 이삭 줍기라도 하려고 남의 논바닥을 기웃대고, 밤이라도 주워서 주린배를 채웠다. 지금이야 별미나 간식으로 먹는 것들이 그 시절에는 온전한 한 끼의 역할로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그 사이에 세상은 변해가며 먹을 것들이 풍족해지고 형편도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열심히만 살아간다면 먹을 것 천지인 이 세상에서 굳이 살기 위해 먹기보다는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먹방이 대세이고 각종 요리프로그램들이 성업 중이다. 당분간은 이 먹거리에 대한 관심들이 쉬이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먹는다는 것"은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나 할까. 나 역시 일단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손이 많이 가는 잔치국수를 하기로 했다. 살기 위해서 먹는 거였다면 대충 했겠지만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그에 소요되는 수고로움쯤은 기꺼이 감당해야만 한다.
넓은 냄비에 1.5리터 정도의 물을 끓였다. 끓는 물에 육수를 내기 위한 5가지의 재료(다시마, 멸치, 새우, 황태채, 디포리)들을 넣고 5분 후에 다시마는 건져내고 10분 정도 후에는 모두 건져냈다. 육수만 준비하는데도 20분 넘게 걸렸다. 오전시간은 짧지만 한가하니 차근차근하기로 했다. 한 가지 재료만큼은 살기 위해 선택했다. 고기를 먹고 살을 찌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면 염증수치가 올라갈 수 있으니 고기를 많이 먹고 살을 찌우면서 면역력을 키우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그것도 희끗한 머리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내리신 처방이니 이유불문 따라야 한다. 그러하니 어떤 고기든 먹어야 하는데 먹으면 속이 불편하여 안 먹게 되고 차라리 안 먹는 것이 속이 편하여 그간 멀리했지만 이제 44킬로를 벗어나려면먹어야한다.
잔치국수와 어울릴만한 고기가 무엇일까. 일단 덜 느끼한 닭가슴살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닭가슴살은 체중증가보다는 단백질섭취라는 측면에서 위안을 삼으려 한다. 작은 냄비에 소금 1 수저, 맛술 1 수저, 통후추 15알, 월계수잎 1장을 넣은 끓는 물에 주방티슈로 잘 닦아준 닭가슴살을 넣고 10분간 중불에서 삶다 불을 끄고 5분 후 꺼내놓았다. 잘 삶아진 닭고기는 결대로 찢어 고명으로 사용할 것이다. 나머지 고명들로는 호박과 당근을 채 썰어서 소금 한 꼬집 넣어 볶아주고 지단은 계란 한 알을 풀어 얇게 부쳐 채 썰어준다. 다음은 신김치를 한쪽 꺼내어 대가 있는 아삭한 쪽만 잘게 썰어 깨소금과 고춧가루로 조물조물하여 고명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대충 썰어 꼭 짜서 들기름과 올리고당을 넣고 볶다가 깨소금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간을 해주며 국수만 삶으면 된다. 노릇하니 먹음직스럽게 우러난 육수에 양파 3분의 1 정도를 곱게 채 썰어 넣고 마늘 1 수저, 집간장 1 수저, 참치액젖 1 수저, 소금 반수저를 넣고 끓이다 어슷 썬 대파 2 수저와 후추도 넣었다. 오랜만에 맛있다는 구*국수 1.5인분을 삶았다.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빼고 그 위에 찢어놓은 닭고기를 한 줌 올리고 토렴하듯이 펄펄 끓는 육수를 넣었다 덜어내고는 돌아가며 호박, 당근, 지단을 올려주고 가운데에 신김치를 올리고 그 위에 김가루를 얹어주고 살며시 끓는 육수를 넉넉하게 부어주니 눈으로 보아도 맛있는 닭고기 잔치국수가 완성되었다. 시간은 요리경력 40여 년 차로 동시에 김밥까지 싸다 보니 1시간 정도걸렸다.
이제 먹을 일만 남았다. 남편국수는 사진처럼 먹음직스럽게 1.2인분이나 담아냈지만 내국수는 0.3인분의 국수에 남은 재료들을 육수에 몽땅 쏟아 넣고 닭고기도 넉넉하게 넣고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국수는 소화장애가 있는 내게는 썩 좋은 재료가 아니기에 고명위주로 먹고 났더니 속이 뜨끈하니 서늘해져 가는 요즘 날씨에 안성맞춤이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샐러드를 먹었기에 마침 며칠 전에 먹고 남은 햄김밥재료로 돌돌 말아 김밥까지 같이 먹고 나니 하루가 든든했다. 맛있게 먹기 위해 오늘도 열심인 한 끼였다.
물론 지금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끼니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인만 건강하고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들 바쁘게 사는 요즈음 일일이 고명을 볶고 하자면 시간도 걸리고 배가 고플 때는 일단 살기 위해서, 얼른 먹고 기운을 내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체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간단한 코인육수 몇 알에 양파, 호박, 당근을 채 썰어서 끓고 있는 육수에 넣고 간을 하며 파, 마늘과 계란을 풀어주면 국물이 완성된다. 그 사이에 미리 얹어놓은 물이 끓으면 국수를 삶아서 헹궈 끓고 있는 육수를 부어서 먹으면 짧은 시간 안에도 훌륭한 한 끼가 될 수 있다. 꼭 제대로 갖추어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형편에 따라 상황에 따라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배가 부르면 마음도 유해지는 법. 굳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끼라도 잘 챙겨 먹으며 한 해의 결실로 풍성해지는 요즈음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넉넉해지는 가을날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