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조카들과 약속한 대로 올추석은가족들일정이 가능한 날을 정하여 미리산소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긴 연휴로 마음이 들떠 있을 직장인들을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행을 가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든 꽤 유용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 조카들을 위해 시간을 내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산소 앞 상석 위에 올릴 음식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작년에는 전 세 가지와 송편도 4킬로나 샀더니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힘들게 많이 준비하지 말라는 형제들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하여 올해는 진짜진짜로 아주 간소하게 준비하기로 했지요.더구나 과일은 둘째 동서가 준비하기로 했으니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포와 술, 약과, 산자를 사고 적거리는 등심을 넉넉하게 사서 양념에 재워두고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녹두전 한 가지만 만들기로 했습니다. 녹두를 불려서 갈고, 녹두반죽에 들어갈 속을 준비하고, 올려줄 고명도 준비하자니 손이 많이 갑니다.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할 때는 후딱 만들어서 먹곤 했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음에도 어머니의 그 손길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부칠 준비를 다한 후에 간도 볼 겸 한 장을 먼저 부쳐서 먹어보았어요. 오늘은 남편이 기미상궁을 했지만 언제나 그 간을 보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간도 잘 맞고 맛있다 하시며 녹두전 한 장을 다 드시곤 하셨는데 따뜻한 이 전을 바로 드릴 수 없어 아쉽기만합니다.
상석에 올릴 녹두전은크게 부치고 나머지는 집에서 두고 먹거나 아들 딸에게 주려고 조금 작게 부쳐서 냉동시켰습니다. 가끔 반찬 없을 때 한 장씩 꺼내어 데워 먹으면 새로운 맛이 있거든요. 다만 생고기가 들어가 있어 높지 않은 온도에서 충분히 익혀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는데 고생한 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말끔하게 벌초가 끝난 푸르른 잔디 위에서 온 식구가 모여 차례를 지내고 새벽부터 일어나 심심하게 구워온 등심과 남편이 줄 서는맛집에서 사 온 송편, 따끈하게 데워온 녹두전을 시원한 식혜와 함께빙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좀 이른 감은 있지만 명색이 추석이니기름냄새도 풍기고좀 번거롭긴 해도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녹두전을 부치며 여러 생각들이 오가더군요. 명절을 미리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 욕심대로라면 첫 번째는 앞으로 명절과 제사 등을 내대에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가냘프기만해서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에게 이 풍습을 도저히 넘겨주고 갈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어 매년 만들던 송편도 작년부터 사고, 음식도 줄이고, 전도 한 가지로 줄였습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이 녹두전만큼은 당분간 부쳐야 할 것 같습니다. 딸도 경력단절 후 뒤늦게 다시 도전하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며느리도 역시 당당하게 본인의 일에 집중하며 멋지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바람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해요.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명절 전날에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 면회를 가고 싶기때문입니다. 먼저 가신 조상님을 잘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살아계신 어머니를 먼저 살펴드리고 싶어서요. 그렇다고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아주 잊을 수야 없는 일입니다. 이다음에 내가 떠나거든 차 한잔에 꽃 한 송이면 족하다고 말한 것처럼 각자의 방식대로 이어지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부친 녹두전을 따뜻하게 데워서 드시기 좋게 잘게 잘라어머니 입에 넣어드리면 얼마나 맛있다 하실까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식혜도 미리 만들었으니 벌써설렙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세상 떠나시기 전에 미리 식혜가루(엿기름)도아주 많이 만들어 주고 가셨거든요. 이다음에 나는 무엇을 남겨두고 가야 할지 오늘밤 고민해 봐야겠어요. 몸도 마음도 따스해지는 추석명절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