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즈의 아이스크림통이 바닥을 향해 비어 가고 있지만 전혀 아쉽지가 않다. 예전이라면 온 가족이 달려들어 몇 입 먹어보기도 전에 한 번에 끝나버릴 양이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먹었음에도 아직 남아있는 양에 기쁘기까지 하다. 언제 이렇게 나 자신만을 위해 온전히 먹었던 적이 있을까. 전혀 기억에 없다. 며칠에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몇 수저씩 꺼내먹는 이 맛은 지금 이 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아무리 좋아해도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았다. 자주 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흐르고 이제 그 자리를 손주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선물 받은 이 큰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은 매일매일 나 혼자만의 디저트가 되었다. 돌봐주고 있는 손주들도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건강 때문에 관심이 없던 터라 야금야금 혼자서 먹을 때마다 나를 돌보는 달콤한 시간이라 여겨본다. 나에게는 황혼육아에 내년이면 백수가 되시는 시어머니가 계시다. 어른을 돌보고 손주들을 돌보지만 정작 본인은 돌봄을 받을 수 없는 낀세대라 할까. 내가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그 누구의 돌봄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에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내가 나를 돌보고 굳건하게 이 자리를 지켜나가야 한다.
날이 갈수록 병원에 가는 날들이 늘어가고 약봉지가 쌓여가지만 조금이라도 아프면 참지 않고 수액을 맞고 기운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좀 더 나를 위해 하는 일들에 대해 인색하게 굴지도 망설이지도 않기로 했다. 그래야만 내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내게 맡겨진 임무들을 무사히 마치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가도 후회스럽지는 않다. 사랑스럽게 자라나는 손주들이 주는 그 기쁨은 무엇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여전히 해맑은 모습으로 맞아주시는 시어머니의 그 웃음을 지키는 지금이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돌봄이라는 것이 때로는 고단하고 힘겹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이 굳건하게 자리할 때 그 길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내하며 헤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웠던 순간들로 기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결코 슬프지 않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괜찮다 하여도 긴가민가 하는 그 모습이 더 나를 맥 빠지게도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 비록 아이스크림 한 통이지만 나를 돌보고 아끼며 나를 위한 시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내게 주어진 생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떠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