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만 밤새 켜두었다 / 희야
휴지를 다 쓰고 심지만 남았다
채워야지 하고서는 그만 깜박깜박
환풍기를 누르고 잊고 있었다
꺼야지 하고서는 그만 깜박깜박
화장대 불을 켜놓고 그냥 나왔다
서둘러 나오느라 그만 깜박깜박
가스불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라,
어디 있지?
가방을 주머니를 뒤져도 없는 핸드폰
슬그머니 내밀어주는 따스한 손길
누가 다 채워놓고 껐을지
고마운 마음만 밤새 켜두었다
가끔은 나의 닉네임 앞에 스스로 '허당 00'을 붙이곤 한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질서 있게 아니 완벽하게 해내려고 온 힘을 다 쏟는 편이다. 하지만 모임날짜를 잊는다거나 알 수 없는 내 기준에서의 사소한 일들은 까맣게 잊곤 한다. 오전에 분명 '저녁에 봐요.' 해 놓고서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언니 왜 안 오셔요.' 하는 전화가 온 뒤에라야 헐레벌떡 달려간 적도 여러 번이다. 뭘 놓고 나오거나 핸드폰은 말할 것도 없고 걸핏하면 쓰던 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주머니마다 찾고 난리도 아니다.
분명 야무지게 일처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챙겨야 할 만큼 허당미가 있어서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스스로 '허당 00'으로 자진납세하며 미안함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하니 집에서도 시시때때로 크고 작은 일들을 저지르곤 한다. 반대로 완벽한 편인 사람과 살고 있다. 물론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네비 없이도 온갖 길을 정확하게 찾아다니던 그 촉은 좀 약해졌지만 내가 저지른(?) 뒤처리를 다해준다. 그런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