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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옹치 해변과 서핑의 성지 죽도해변에서

명절 여행 2~3일 차

by 희야

소금산을 내려오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시간 반을 달려 양양에 있는 아들이 없는 아들 집에 도착했다. 아들은 처가에서 머물다 올 예정이므로 우리만의 숙소로는 그만이었다. 아파트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편히 쉬다 잠이 들었다. 둘째 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비가 내렸다.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아들이 추천해 준 외옹치 해변으로 향했다.


명절을 맞아 가족 단위로 여행을 왔는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우리도 우산을 들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를 따라 거닐며 가을 바다를 만끽했다. 비는 내리고 바람까지 불며 요동치는 파도는 새하얀 포말을 거세게 일으켰다. 환영치고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바다를 삼켜버릴 듯이 밀려든다. 한참을 거닐다 출출하여 맛집을 찾아 나섰다. 마침, 입구 쪽에 생대구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발견하고 대기를 적었다.


자고로 맛집은 기다려야 제맛, 20분 후에 입장하여 마주한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대구탕으로 으슬으슬 추워지던 몸을 녹이며 정신없이 바닥까지 퍼먹었다. 심심하면서 담백한 대구탕도 맛있지만, 곁들여진 반찬도 입에 맞아 남김없이 접시를 비웠다. 화려하진 않아도 우연히 발견한 집에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영랑호. (이 이야기는 라디오 여성시대에 채택된 사연으로 양희은, 김일중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영랑호를 다녀온 그다음 날에도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따스한 차라도 마시기 위해 죽도해변을 찾았다. 양양의 죽도해변은 서핑(파도타기)의 성지답게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과 이를 응원하는 친구, 가족들로 가득했다. 저 멀리서 산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싣고 묘기를 펼치는 서퍼들의 모습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카페에 앉아 바다를 즐겼다.


여행은 내게 닫혔던 마음을 열고 추억을 쌓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출렁이는 파도에 마음을 띄우며 따스한 차를 앞에 두고 쌓여가는 우리 두 사람의 시간. 지금의 이 시간이 어제가 되고 일 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보물창고가 된다. 카페로 오다 죽도정이란 곳을 발견하여 오르기로 했다.


새소리 바람 소리가 쉬어간다는 죽도정은 꽤 가파른 구간으로 헉헉대며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새하얀 파도가 가슴 가득 채워진다. 언덕길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죽도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철재로 만들어진 전망대까지 올랐다.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사이에 두고 인구 해변과 죽도 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바다에 서핑을 즐기는 푸른 청춘이 있다면 죽도정을 오르는 길에는 중장년들의 깊은 발걸음이 지난 세월을 음미하듯 이어졌다. 대부분 5~60대분들로 줄줄이 뒤를 이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알고 지내던 이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본 사이지만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줬다. 여행은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고 긴장의 끈을 풀게 한다.


정확하게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온 여행은 아니지만 발길 닿는 대로 적어도 4박 5일 정도는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떠나는 날부터 계속 내린 비도 모자라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비 예보에 일정을 그만 접기로 했다. 속초, 강릉, 고성까지 둘러보며 맛집을 섭렵하겠다던 야무진 꿈은 비 오는 거리에 흘려보내고 장을 보러 갔다.

아들과 함께 갔던 식자재마트에서 깜짝 특가로 바나나 2송이를 5천 원에 사고, 커다란 아보카도 10개를 만 원에 샀다. 이런 횡재를 만나다니. 이어 메추리알, 소시지와 양파, 간편식 김치찌개 등을 사 들고 왔다. 부지런히 밥을 하고 손녀를 위해 메추리알을 조리고, 아직도 초딩 입맛인 아들이 좋아하는 양파 듬뿍 소시지 케첩 볶음을 만들어 놓고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도 끝나지 않았는데 내비를 보던 남편이 집까지 가는 길이 밀리지 않는다며 서둘러 짐을 챙겼다. 급하게 머물던 자리를 정리하고 밤공기가 흐르는 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야심 차게 떠난 여행을 2박 3일 만에 돌아왔다. 짧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꽉 채운 3일이었기에 절대 아쉽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아니고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다음을 기약했다. 명절 때마다 여기저기 여행객들로 넘쳐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오신 분들이 많아 놀랍기도 하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풍철에 넘쳐나는 인파들로 떠밀려가듯이 가는 그런 여행이 아닌 느리고 차분하게 쉼이 느껴지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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