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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el K Dec 08. 2022

그레텔 이야기 4

Gretel, Gretel의 첫 번째 어른 동화




헨젤이 없는 아빠의 집은 내게 아무 곳도 아니었어요.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고 앵무새 마님과 싸우기 시작했지요. 앵무새 마님은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피아노를 두들기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나는 숲속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동안 마녀와 마주칠까 봐 겁이 나서 숲속에는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이젠 차라리 마녀에게 나를 데려가거나 죽여 달라고 빌고 싶었어요. 정신없이 걷다가 오후가 되면 갑자기 주변이 어둑해지곤 했어요. 숲에는 밤이 덮치듯 오니까요. 그러면 또 덜컥 겁이 나서 숨이 끊어지도록 달렸죠. 


숲을 빠져 나와 뒤를 돌아보니 말라죽은 키 큰 나무 위에 새들이 주렁주렁 맺힌 열매처럼 앉아 지저귀고 있었어요. 헨젤의 손을 잡고 숲속을 같이 헤매던 일이 떠올랐어요. 그때 새 한 마리가 나타나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었지요. 우리를 마녀의 집으로 데려다준 그 하얀 새는 올빼미였어요. 날개를 쭉 펴고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갔던 새. 그렇게 날 수 있는 건 오직 올빼미뿐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어요. 

내가 더 이상 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가을이 왔을 때 나는 매일 강가로 나갔어요. 친구를 찾고 싶었거든요. 마녀의 집에서 도망쳐 아빠의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가 강 건너는 걸 도와주었던 오리 말이죠. 그 오리는 내 말을 알아들었고 나는 오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어요. 내 등에 타. 내가 도와줄게. 헨젤은 둘이 같이 올라타서 빨리 가자고 재촉했지만 나는 거절했어요. 오리가 너무 힘들면 안 되니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한 번에 한 사람만 타야 된다고요. 


헨젤이 먼저 건너고 내가 건넜어요. 오리 등에 타고 있을 때 오리는 내게 친구라고 했어요. 자기는 가족들과 겨울을 보낼 곳을 향해 가는 긴 여행 중이라고 말했고요. 내년에 이곳을 지날 때 또 만나자고 작별 인사를 했지만 그 후로 다시 보지 못했어요. 철새들이 오는 계절이 되면 강가에서 오리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훑어보는 습관이 생겨버렸어요. 그러다가 반대편 강가 풀 속에 누워있던 배를 발견했지요.   







새벽에 아빠와 앵무새 마님은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나는 현관문 앞에 잠시 서서 그곳에 서있던 헨젤을 생각했죠.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문을 닫았어요. 두려웠던 마음에 비해 내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조금 놀랐어요. 강가 풀 속에서 배를 봤을 때 나는 거기에 올라타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목소리가 반복해서 말해주었기 때문이지요. 알아듣기에 어려울 만큼 작았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집중할수록 또렷해졌어요. 나직한 여자 어른의 목소리였어요. 나를 잘 아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는 항상 내 이름을 연달아 두 번 불렀어요. 

그레텔, 그레텔.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그 배를 타. 

그레텔, 그레텔. 걷기 시작하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요.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 배를 힘껏 밀어낸 다음 간신히 올라탔어요. 온몸이 다 젖었죠. 바람과 물살이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정오가 넘어서야 강의 반대편 어딘가에 닿았고 나는 배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온통 무성한 나무숲뿐이었죠. 막막했어요. 그 순간에 목소리가 크게 말했어요. 그레텔, 그레텔. 너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그때 알았어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다정하긴 했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였어요. 


마녀는 내게 악몽으로만 온 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 후로도 길고 긴 여행을 했어요. 심지어는 두 번째 여행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세 번째, 네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가 끝나기도 했으니까요. 마녀의 집을 찾았냐고요? 어렸을 때 마음속으로 간절히 그리워했던 그곳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그곳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저의 두 번째 여행은 끝났어요. 충분히 긴 여행이었어요. 저는 이곳에서 마녀의 빵에 저의 레시피를 더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빵을 만들면서 살고 있답니다. 이젠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여기 까지랍니다. 



이제 따뜻한 커피 한잔 하면서 당신 여행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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