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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el K Dec 08. 2022

그레텔 이야기 3

Gretel, Gretel의 첫 번째 어른 동화



마녀는 우리의 사정에 대해 시시콜콜 묻지 않았어요. 단 그 집에 사는 동안 두 가지 조건만 지키라고 했지요. 하나,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밥값을 해야 한다. 둘, 마녀가 혼자 쉬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마녀는 항상 텃밭이나 부엌이나 정원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살면서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했으니까요. 나는 텃밭의 잡초를 뽑고 돼지들에게 밥을 주고 집안 청소하는 일을 도왔어요. 마녀가 방안에 있을 때는 까치발로 걸었고요. 마녀는 가끔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마을에 갔는데 그럴 때면 항상 방문을 잠갔어요. 하지만 손재주가 좋은 헨젤은 어렵지 않게 낡은 자물쇠를 열었지요. 


꽤 넓은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어요. 테이블 위에는 책과 종이와 연필과 붓들이 질서 있게 뒤섞여 있었고요. 방에선 흙 냄새 같은 알싸한 냄새가 났는데 가만히 맡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어요.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주로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나 고양이들이 그려져 있었어요. 헨젤은 주위를 휙 둘러보고 나갔지만 나는 혼자 남아 그림 속 새들을 한참 들여다 봤어요. 창문으로 스며드는 새소리가 그림 속 새들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마치 재미있는 마법에 걸린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 그거 알아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주로 자기 짝에게 안부를 묻는 말이랍니다. 너 어디 있어, 괜찮아? 응, 나 여기 있어. 너는 어때? 이런 식이죠. 난 어렸을 때 새들의 말을 알아들었어요. 유년기에 주어진 초능력 같은 거랄까. 그 후로 나는 마녀가 외출할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서 새 그림을 보고 창 가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상상하곤 했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하지만 헨젤은 달랐지요. 갑자기 마녀에게 못되게 굴더군요. 보석을 훔쳐서 달아나기로 결심한 날부터 미워하고 미움받기로 작정했던 것 같아요. 하던 일도 하지 않았고 일부러 크게 발소리를 냈어요. 조용히 걸으라는 마녀에게 잔소리하지 말라며 대든 적도 있었어요. 그날 마녀가 시장을 보러 나가자마자 헨젤은 마녀의 침실로 뛰어 들어가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어요. 미리 봐 두었던 거죠. 거기에서 목걸이, 반지, 귀걸이, 금덩어리 등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마녀는 그런 보석들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거든요. 그 물건들은 마치 뚝 떼어서 한쪽으로 치워놓은 시간처럼 서랍의 깊은 구석에 쳐 박혀 있었어요. 


헨젤이 금붙이들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어요. 나쁜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혼란스러웠지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가 나를 두고 혼자 가버릴까 봐 두려워서 함께 마녀의 보석들을 주머니에 챙기려 했어요. 하지 마! 헨젤이 소리쳤어요. 내가 다 할 테니까 너는 아무것에도 손대지 마. 그랬어요. 우리는 숲속으로 내달렸어요. 숨이 끊어질 것 같아도 쉬지 않고 달렸어요. 그날 보보와 고양이들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나중에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요. 혼자 그 애들의 이름을 얼마나 불렀는지 몰라요.   






배낭을 메고 현관 앞에 서있던 헨젤의 실루엣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려요. 내가 본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거든요. 그 전날에 큰 소동이 있었어요. 헨젤이 아빠에게 그러더군요. 내다 버린 자식이 목숨 걸고 구해온 재산을 여자 꼬시는 데 다 써버린 인간이라고요. 아빠는 헨젤을 때렸어요. 그리고 기분이 상한 앵무새 마님을 달래려고 다음 날 유람선 여행을 떠나버렸죠. 오빠도 여행을 가는 거냐고 물으니 헨젤이 몸을 돌려 나를 한참 바라보더군요. 그리고 말했어요. 너에게 화가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뭔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밖으로 나가더군요. 요란하게 현관문이 닫힌 직후에야 나는 알았어요. 오빠가 다시는 그 문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요. 


그날 밤 마녀가 찾아와 내 방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면서 소리쳤어요. 

요 년, 못된 도둑년, 은혜를 복수로 갚는 년. 당장 내 보물을 내놓아라, 당장!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이었죠. 몸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심장이 크게 뛰었어요.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만 혼자 두고 가버릴 수가 있어? 마녀 악몽은 거의 매일 반복되었어요. 이러다가 미치겠구나 싶을 때쯤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죠. 꿈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그 목소리는 처음엔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또렷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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