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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리누리 Mar 09. 2023

환상숲의 온도는 기적℃

-제주 환상숲곶자왈공원에 다녀와서




현대문학 - HYUNDAE MUNHAK (hdmh.co.kr)  



브런치를 빌려 ‘다연에게’ 보냈던 지난 편지의 답장이, 주간 현대문학 <다정의 온도>에 연재되었다. (편지의 주인공 ‘다연’은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그림에세이를 발표한 정다연 시인입니다. 한겨울의 뜨듯한 난로 같은 다연의 글이 매주 목요일마다 한 편씩 연재되고 있으니, 한 번씩 들러주세요!)



제주에서 돌아와서 다연을 만난 밤, 그간 통화로 다 하지 못한 제주 얘기를 새벽까지 나누었는데, 그중에서 ‘환상숲곶자왈공원’의 해설사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던 ‘천리향’ 이야기가 답장에 실렸다.


“숲 해설사님에 따르면 천리향은 천 리까지 향이 퍼져서 ‘천리향’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했지. 그렇게 향을 내는 이유는 천리향이 낮은 곳에서 피기 때문에 다른 꽃들에 비해 꿀벌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고. 놀라웠던 이야기는 바로 다음부터야. 천리향은 진한 향기를 내다가 꿀벌이 찾아와 수정하게 되면 향을 내지 않는다는 거. 수정이 이루어진 꽃은 다른 꽃을 위해 더는 향기를 뿜지 않고 기다린다는 거 말이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모든 꽃이 수정을 끝내면 다 함께 다시 향을 내기 시작한다고.” (정다연,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사람의 이야기」 中)

 

다연이 공들여 정리한 아름다운 말들처럼, 그날 해설사님의 걸음을 따라 듣는 한 시간 내내 수시로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을 만큼 잊을 수 없는 해설이었다. 숲이라는 곳을 그저 관광하고 지나치는 장소로 소개받기보다, 숲에서 살아가는 여러 존재의 생에서 엿보이는 놀라운 이야기를 배운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역시 좋은 이야기는 시공간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감동을 전하는 것일까. 천리향 얘기를 전해 들은 다연도 놀라서 이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남겨보라고 권했는데, 사실 그때는 써도 될지 말지 확신이 없었다. 환상숲을 다녀온 날 벌써 마음이 잔뜩 벅차올라 SNS에 후기를 한가득 적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해야 할 테니. 그런데 내게는 ‘해설’이 누군가 애써 고민한 노동이자 하나의 작품 같아서, 자칫 누군가의 자산을 함부로 훔치는 것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그래서 마침내 글을 쓰는 지금도 겁이 난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지나가시는 아무나 알려주세요!)


다만 다연의 답장을 읽고 당장이라도 쓰고 싶어졌다. 천리향이 해설사님에게 감동을 주고, 해설사님이 다시 내게 감동을 주고, 환상숲에 가보지 않은 다연도 내가 받은 감동을 엇비슷하게 느끼게 되었다니까, 환상숲을 잘 모르는 사람과도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아래부터는 그 작은 바람의 기록이다.




‘환상숲곶자왈공원’은 예약제 방문을 받고 있다. 나는 조금이라도 한가하게 보고 싶어 오전 9시 첫 타임에 신청했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입구 주위를 구경하다가 팻말에 적힌 아래 문구를 보았다.


 

“나무에 미쳐 살아온 서른 넷 아버지는 (…) 빚을 내어 돌땅을 샀습니다.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고 닭도 키우고 양봉도 해봤지만 도무지 예뻐할 수 없는 숲이었습니다. 아버지 홀로 ‘환상 숲’이라고 여겼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희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25년 은행에서 근무해온 든든한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어릴 적 나무가 밥 먹어주냐고 따졌는데 아버지의 생명까지도 살려주더군요. 비로소 저희 눈에도 숲이 환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에게나 ‘환상숲’으로 불립니다.”


한 가족의 오랜 인생이 군데군데 축약된 글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숲이 생명을 살렸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사유지라고 하니, 부디 저기 보이는 숲속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연을 관광지로 조성한 제주 곳곳에서, 자연을 상품화하기 바빠 훼손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숲지킴상까지 받았던 환상숲곶자왈에서 그런 걱정은 기우임을 머지않아 깨달았으나, 새로운 걱정이 시작되었다. 9시 정각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 말고 다른 관람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러다 1:1 해설을 듣는 게 아닐까? 그럼 집중 과외받는 느낌이라서 더 좋기는 하겠다만, 나 낯가리는데? 괜히 오바해서 반응해드리다가 서로 지치면 어떡해? 잠깐 사이 온갖 걱정이 몰려왔다. 평소 여행을 즐겨 다니지만,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적은 수년 만이었다. 제주살이 초반에 비자림에 갔다가 우연히 시간대가 맞아 듣게 된 해설에 반해서 뒤늦게 숲해설에 관심을 가졌고, 여기저기서 찾다 보니 특히 칭찬이 자자한 환상숲곶자왈공원의 해설이 궁금해서 찾아온 길이었다.

(별 얘기 없지만 비자림 해설이 짧게나마 언급된 후기가 궁금하시면, 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p/CoWZGnrLwZf/?igshid=YmMyMTA2M2Y= 조만간 여유가 되면 이 이야기도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올리고 싶지만 과연 제가 그럴까? 자신이 없습니다…)


다행히 해설을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관람객이 잔뜩 모였다. 생각해보니 더 일찍 환상숲에 오고 싶었는데 매번 예약이 다 차서 가까스로 왔던 길이었으니 괜한 걱정이었다. 특히 황금 시간대는 며칠 전부터도 예약이 찬다. 나는 여행 기간이 길어서 겨우 방문할 수 있었으니, 예약을 서두르시길!

   

그렇게 환상숲을 “상식이 통하지 않는 땅”이라고 소개하며, 관람객만큼 부드럽게 들떠 있는 이ㅈㅇ 선생님의 해설이 시작되었다. 마침 정권이 바뀐 작년부터 오남용되고 있는 ‘상식’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자주 고민하고 있어서인지,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설사님이 가리키는 ‘상식’은 나무를 그리는 방식부터 출발했다. 보통 나무를 그리면 한 그루씩 그리게 되는데, 제주 곶자왈의 나무를 한 그루씩 그리기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무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그루가 여러 몸으로 갈라져 있으니까. 육지에 사는 나무는 윗몸이 잘리면 그루터기 밑동으로 남게 되지만, 여기 나무들은 잘린 몸에서 새 나무가 생겨나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래 있던 나무에 싹이 나는 것을 '맹아'라고 부르며 환상숲은 맹아력이 강한 나무들로 이뤄진 숲이라고 했다. 즉, 태생적으로 자라기 좋은 땅이 아니라, 살아남기에 척박한 환경을 딛고 꿋꿋이 있는 나무들의 숲이었다.


‘곶자왈’도 마찬가지였다. 육지의 ‘숲’이 제주의 ‘곶’이고, ‘정글’ 같은 가시덤불이 바로 ‘자왈’이었다. 그러니까 곶자왈이란, 숲과 덩굴이 뒤엉켜 하나 된 정글숲 같은 것. 덕분에 사람이 없었던 한때는 햇빛 받기를 좋아하는 가시덤불이 수십 년간 이 숲을 지켰다고 한다. 그러자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들이 모여 그만큼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내니, 가시덤불은 자연스럽게 떠나게 되었다고. 지금은 몇 군데에만 가시덤불이 남아 있는데, 거기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살이 딱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곶자왈에는 흙이 없다는 게 가장 믿기지 않았다. 나무 아래 낙엽 아래 이끼와 덩굴을 들추면 전부 돌과 바위였다. 점성이 굵고 거친 용암이 불규칙하게 흐르다 굳어 탄생한 특유의 지형이었다. 환상숲에 몸을 담은 모든 생명이 돌을 붙잡고 쉽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고, 이 때문인지 제주 도민의 삶을 해녀뿐만 아니라 곶자왈로도 비유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비자림 해설에서 들었던, 나무에게 바위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도 잠시 떠올랐다. 뿌리 내린 나무의 미생물들이 활달하게 움직이다 보면 단단한 돌이 부수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마치 어릴 적 읽었던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해님과 바람 이야기처럼, 부드러운 나무의 힘으로 무뚝뚝한 돌을 살살살 간지럽혀 웃음보 터뜨리는 모습 같아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곶이 자왈이 되고 자왈이 곶이 되고 돌에 나무가 자리를 잡고 나무가 돌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그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슬슬 천리향 이야기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숲의 지식만을 배운다기보다 숲과 더불어 지내는 삶의 이야기를 듣는 환상숲 해설의 묘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환상숲에서는 여러 색깔의 끈을 묶어 나무들의 건강을 구분한다. 파란 끈은 조금 아프지만 치료가 가능한 나무에게, 노란 끈은 몹시 아파하는 나무에게, 빨간 끈은 수명을 다한 나무에게. 해설사님이 그럼 노란 나무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고 내가 기후 위기에 대처할 실질적인 해결책만을 생각할 때, 뜻밖의 답이 들려왔다.


노란 끈과 파란 끈을 같이 묶은 나무. 건강해졌다는 뜻일까?


“저는 노란 끈의 나무를 보면 무조건 안아줍니다. 그리고 괜찮아? 미안해! 내가 너 덕에 이렇게 일하고 사는데 네가 아픈지도 몰랐어, 칭찬과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속삭여요. 이 또한 제 몫이니까요.”


게다가 숲에 손님이 없는 날에는, 아픈 나무 곁에 머물러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무와 친구였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사과를 따가고 가지와 줄기를 베어가서, 끝내 나무의 밑동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 반대로 환상숲에서는 어른이 되고도 나무와 친구하며 오래 잘 지낼 수 있는 행복의 비밀을 읽은 기분이었다. 나무 덕분에 먹고 살게 되었으니, 이 모든 삶이 나무 덕임을 잊지 않고 나무를 일이자 벗으로 돌보는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이 숲을 사랑하는 것일까.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제껏 ‘해설사’라고 하면 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그림만 떠올렸는데, 제주에서 숲해설을 들을수록 해설사의 이미지가 전혀 다르게 바뀌어 다가왔다. 이 분들에게 해설은 일을 넘어선 삶이구나 싶어지는. 그런데 더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아픈 나무에게 매일 사랑과 정성을 주고 두 달 정도가 지나면, 노란 끈의 나무 열 그루 가운데 여섯 그루는 건강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 끝내 구해주지 못해서 빨간 줄을 묶어주게 된 죽은 나무에게도 해설사님은 잊지 않고 인사한다고 했다.


“살아 있을 때 더 놀러 왔어야 하는데 미안해. 그래도 늦게라도 찾지 않으면 더 후회할 것 같아서 이제라도 왔어. 앞으로도 내가 너를 기억할게. 너 그간 정말 잘 살았으니까. 이 척박한 숲에서 살아냈다니 대단했으니까. 우리 친구들에게도 참 잘했다고 다 얘기해줄 테니 외롭게 떠난다고 생각하지 마.”


죽은 사람에게도 귀가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운 말을 들려줘야 한다는 옛말을 새삼 되새겨야 하는 오늘날이라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예우를 갖춘 해설사님의 마음이 죽은 나무에게도 기어이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되살아나는 기적은 아니었지만, 나무가 있던 자리에 훗날 피어오른 버섯마다 다른 땅의 버섯보다 훨씬 크고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과연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누군가는 일어날 리 없어서 기적이라지만, 누군가는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했기에 기적을 꾸준히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여기서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즈음부터 줄곧 울컥하기 시작했다. 해설사님이 함께 들려준 독일의 ‘발도로프’라는 학교의 이야기에 마음이 와락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요컨대, 13년간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을 안아준 어느 선생님이 있었단다. 그러자 처음에 부담스러워했던 아이들도 나날이 반갑게 안기게 되었단다. 그렇게 서로 꼭 안고 안겨 대화를 나눴단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따듯하게 끌어안아 행복을 배로 나누는 몸의 대화 말이다.


그제야 나는 해설사님이 초입부터 우리에게 계속 서로를 안아달라고 요청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었다. 도중에 퀴즈를 내고 누군가 맞추면 그 사람의 일행에게 칭찬 삼아 안아달라고 청한 것이었다.


“한 번만 꼭 안아주세요. 사랑받는 사람은 얼굴이 다르거든요. 자연스럽게 웃음이 넘쳐나지요. 그러니 우리 서로 안아주며 미안해, 고마워, 수고했어, 그리고 사랑해, 라고 예쁜 말들 보내주세요.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은 표정으로 여행합시다. 여러분의 사랑이 담긴 표정이 사랑스러운 삶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겨우 참아내면 또다시 순식간에 차오르는 눈물을 거듭 감춰보다가, 초반에 들었던 가시나무 얘기를 다시 듣고 결국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한참 하늘만 올려다봐야 했다. 제피나 산초의 가시에는 유난히 독성이 강한데,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생겨나고 자란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강하다면 가시를 곤두세워 보호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아마도 연약해서 그러리라고. 마찬가지로 주변에 가시 돋친 사람이 있고 자꾸 그 가시에 찔려 상처받는다면 무작정 싫어하진 말라고. 어쩌면 그 사람 예전보다 많이 약해져서, 저도 자기가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른 채 강한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찔렸다고 해서 화내기 전에 왜 그러는지 가만히 물어봐 주고 얘기를 들어주면 어떻겠냐고. 혐오로 엉망진창이 된 요즈음 수시로 슬퍼져서 자꾸만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다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이 글을 시작하게 만든 ‘천리향’ 이야기도 거기서 더 나아갔다. 해설사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천리향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 환상숲이다. 천리향이 어두운 동굴이나 나무 그늘 아래 사는 극 음지과 식물이기 때문이다. 발코니 화분에 천리향을 기르면 꽃도 잘 나지 않다가 밤에 유난히 향이 강해지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천리향은 가장 추울 때, 어쩌면 남들이 가장 힘들어할 시기에 꽃을 피우는 꽃. 그런데 나 여기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간절하게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쓰던 꽃이, 한 뿌리에 더불어 사는 친구들까지 다 함께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일부러 묵묵해진다니. 공동체를 꿈꿀 수 있는 삶의 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향기가 더 강한 꽃만 계속 살아남는다면, 한 몸에서 지내는 다른 꽃들이 병들고 또 병들다가 결국 다 같이 시들어버릴 테니. 곶자왈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곶과 자왈으로 만나 너그러이 상생하듯, “갈등이 있기에 숲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하는 환상숲처럼 서로 다른 존재끼리 지지고 볶다가도 어우러질 갈등의 과정을 감수하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문득, 모든 꽃이 동등해지기를 기다리다 일순간 다 함께 향을 내는 천리향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세상을 일굴 수 있을까? 어떻게 이기고 지는 계산 너머로 향할 수 있을까? 해설사님 말처럼 실은 향기를 멀리 내뿜는 것보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순간을 위해 기다려주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천리향의 제일가는 능력인 것 같다.


그래서 해설사님의 이 말만큼은 한 글자도 빼두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어 다급하게 녹음기를 켰다.


숨골 속에서


“혹시 천리향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지내다가 여행 오신 분 계신가요? 여러 고민 가운데 가슴이 오래 먹먹했고, 지금도 그러시다면 부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우리 모두 천리향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어두운 시절 다 버티고 마지막까지 견뎌내며 끝까지 자신만의 향기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예쁜 꽃이 자라 있을 여러분을 세상이 알아줄 겁니다.”
 

어쩌면 그저 이뤄질 수 없을 희망에 찬 말일 수 있다. 누군가는 냉소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향을 품었어도 끝끝내 내비칠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이 굳건하니까. 그런데도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기적을 이뤄낸 환상숲이라는 놀라운 불모지에서 억척스러운 생명에 둘러싸인 채로, 누구보다 오래 그들을 사랑해왔을 해설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믿어보고 싶었다. 그러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당장 충분한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온종일 소리쳐도 십만 원도 채 벌기 어렵다는 해설을 업으로 지고 사는 선생님들로부터 가끔 들리는 슬픈 목소리야말로 꼭 천리향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자림 해설사님이 연리목으로 잘못 표기된 나무를 연리지로 바꿔 달라고 수년간 요청하고도 거절당하다가 도지사의 명령 한 마디에 바로 해결됐다며, 해설사가 이러한 직업이라고 자조했던 순간처럼. 몇 년간 이 숲을 여덟 번씩 해설하면 어떨지 묻던 환상숲의 해설사님처럼. 그런데 그 순간조차 숲과 사랑에 빠진 얼굴로 아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두 분에게 함부로 대꾸할 수 없었다. 제주에는 원래 까치가 없었고 대신 까마귀가 길조를 부르는 새였는데, 까치 없는 섬은 불행하지 않을까 물은 모 정치가의 말에 비행기에 태워 데려온 까치들이 지금은 15만 마리가 넘게 되었다는 기가 막힌 에피소드도 그냥 웃어넘길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까치 없는 섬을 까치 사는 섬으로 바꿔낼 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의 목소리와 목소리도 힘을 모은다면 기적이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이 어설픈 글도 그러한 기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된다.


끝으로 제주에서 돌아오고도 제주 이야기를 찾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짧게 덧붙인다. 이미 비자나무 생태계를 망가뜨린 비자림로 공사도 모자라서, 어제부터 #들불축제 를 열고 있다. 산불이 일상이 되었고 며칠 전까지도 피해가 있었던 시기에 오름을 태우는 축제라니. 이곳 환상숲뿐만 아니라 곶자왈이 제주 면적의 십 퍼센트를 넘게 차지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이제는 골프장 따위를 무분별하게 개발하여 반도 남지 않게 되었다고. 흙 대신 돌로 이뤄져 물이 빨리 빠진다는 이유로 곶자왈이 희생된 것이다. 그러나 수십 개의 골프장만큼 피부에 구멍이 생겨난 제주의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무수한 나무를 잘라낸 자리에 잔디를 깔고 다시 잔디를 유지하려고 제초제를 몇 배 이상 뿌려야 하는 인위적인 초록빛 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곶자왈이 흘려보내는 물 덕분에 ‘삼다수’로 유명한 제주의 식수가 생겨났다는데. 이처럼 자연을 파괴할수록 우리 생명도 파괴된다는 진정한 상식을 언제쯤 당연히 실감하게 될까?


환상숲을 전 세계에 하나뿐인 숲, 생명을 살리는 숲이라고 소개한 팻말도 결국 이러한 얘기였다. 세상에 숲은 많지만, 수많은 사람이 전부 각자 다른 것처럼, 환상숲도 이곳에 단 하나뿐인 생명의 터전일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숲을 파괴해야 인간이 행복할까요?”라고 씁쓸하게 읊조리던 해설사님의 “오늘은 환상숲에서 행복했나요?”라는 다른 질문에 “행복해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크게 대답한 어느 아이를 위해, 아이가 빛나게 그려갈 삶을 위해, 행복했던 이 날을 아이가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을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






 * 환상숲이 아버지의 생을 살렸다는 팻말의 문구는, 병증을 이겨내시고 환상숲을 일궈낸 이곳 주인 분의 가족사와 연관이 있어서 일부러 더 적지 않았어요. 인터넷에도 얼마간 공개된 이야기라서 여기에 써도 괜찮겠지만, TV <인간극장>에서 ‘곶자왈, 아버지의 숲을 걷다’ 5부작으로 방송되었으니 이왕 더 궁금하신 분은 찾아보셔요. 가볍게 스포하자면, 환상숲의 기적은 벌써 그때부터 시작되었더라고요!

 

* 녹음한 말을 옮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급하게 적은 메모와 지나간 기억에 의존해서 쓴 글이라서, 군데군데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냥 더 많은 분이 환상숲 해설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니, 살펴보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가 숲에서 느낀 분위기를 반도 담지 못했으니, 마음이 동하시면 제주에 가셔서 꼭 직접 보시기를 바라요. 참고로 곶자왈 지대의 나무들은 상록활엽수라서, 한겨울에도 봄여름처럼 나무들이 푸릇푸릇 초록색이고, 일 년 내내 5~6월의 평균 온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여름에 와도 시원하고 겨울에 와도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하다니, 언제 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해설사님은 눈 오는 날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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