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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리누리 Dec 11. 2023

살아남은 마음, 살아남는 마음

-데이터 메모리 비우기를 하다가



핸드폰에 쌓인 기록을 틈틈이, 아주 천천히 지우고 있다. 기어코 그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와버렸다. 내 불쌍한 폰. 일 년째 과포화 상태다. 진짜 미안해! 더 좋은 주인을 만나야 했는데. 인간이 만들어서 인간에게 버려지는 네게 다음 생도 빌어줄 자격도 없으니, 정말로 죄스럽다. 심지어 11월부터는 용량이 다 바닥나 갑자기 설치할 어플이 생기면 부랴부랴 다른 어플을 지우고, 사진을 찍으려면 이미 있는 사진첩을 덜어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기능을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용량은 필요하다는 걸 나날이 깨닫는다. 몹시, 면목 없다. 얘의 용량이 생명 에너지처럼 느껴져 더 그렇다.


그러니까, 핸드폰도 살아 있는 몸이라고 처음 느끼게 되었다. 살아 죽어가는 몸. 마치 손에 작년의 나를 쥐고 있는 듯하다. 비관적인 생각들만 턱 끝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어렵고 축 늘어져 왜 사는지도 모르고 버텼던 때. 다행히 지금의 나는 겨우 잘 살아남았는데. 다시 나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죽지도 않고 연말에 처져 있지도 않고 이렇게 글도 쓰고 하는데. 이럴 수가 있게 된 하루하루가 무진장 고마운데. 나만 이기적으로 괜찮아지고, 나를 주저앉게 하고 무너지게 한 무게를 얘가 대신 다 가져가 짊어진 듯하다. 내가 가볍게 에너지를 끌어낼 때, 얘는 내 온갖 마음의 짐에 파묻혀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사진첩을 매몰차게 정리할 용기가 아직도 모자라서, 무얼 지울 수 있을지 살피다 벌써 다시 싫증이 나서, 갑갑한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가 습관처럼 녹음기 어플을 켜고 문득, 녹음 파일을 지워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서든 거리에서든, 일상을 보내다 별안간 떠오르고 금세 잊어버릴 멜로디가 생겨나면 급박하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녹음하는 버릇이 있어서. 전에 쓰던 어플이 불편해서 작년에 새로운 어플을 깔았는데, 2022년 7월 14일 ‘내 녹음 번호 1’이라고 기록된 날부터 약 1년 반 동안 400개가 넘는 파일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녹음기를 켜려는데, 얘가 앞으로 한 시간만 더 녹음할 수 있다는 안내 메시지를 보내줘서 알게 되었다.


그 메시지가 너무 절박해 보여서. 안 지우면 얘가 먼저 파업하겠네, 그럼 기록들도 다 사라지겠네! 결국 또 잃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만 앞세워, 1번부터 듣자고 다짐했다. 뭐 언젠간… 다 듣겠지. 듣는 속도가 빠를지, 400번 뒤로 또 쌓여가는 속도가 빠를지, 파일에 이름도 잘 붙이지 않아 직접 듣지 않으면 뭐가 뭔지 파악할 수도 없는 어수선한 번호의 기록들에 반성하며 재생을 눌렀다. 전자 피아노가 아닌 아날로그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 순간, 올해 초까지 서울에서 다닌 피아노 학원에서 녹음했다는 걸 알았다. 아, 그랬지. 학원에서도 레슨이 끝나면 한두 시간씩 남아 녹음기를 켜두고 피아노 치고 노래하고 그랬지. 자취방의 값싼 전자 피아노보다 여기 피아노 소리가 훨씬 좋아서, 일부러 늦은 저녁 시간에 레슨을 받고 학원에 아무도 남지 않고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머무르고는 했다.


그리고,


난 몰랐었네.


내 목소리가 들리고 피아노 반주만 잠시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내게 곧 벌어질 일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 그래 과연 이날의 나는 뭘 몰랐는지 들어나 보자! 흥미진진해진 마음으로 듣는데, 똑같은 노랫말만 다시 들려왔다. 노랫말은 같은데,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난 몰랐었네,


내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순간, 너무 놀라서. 그냥 마주 앉아 즐겁게 떠들더니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 앞에서 굳어버린 모습이 되어서. 겁이 나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듣기만 했다.


사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었네.

난 내가 낯설어.

멈춰버린 내가, 달리지 못하는 내가

난 정말 모르겠어 (너무 울먹여서 가사가 잘 안 들렸다)

모른다고 하기도 싫어졌어 (여기도 들렸다 안 들렸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무척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고, 남은 일 분 동안에는 피아노 반주만 이어졌다. 노래를 시작하며 울었던 게 아니라, 이미 울다가 노래를 불렀던 건지 코도 다 막혀 훌쩍이는 숨소리만 따라왔다.


재생이 다 끝나고, 걔가 울음을 그친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년의 내가 계속 울었다. 웬일로 동생이 집안에 없어 다행이었지…… 소중한 누군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세상이 다 떠나간 것처럼 한참 울게 되었다. 내가 내 몸으로, 내 마음으로 겪어낸 나인데, 진짜 대체 어쩌라는 건지? 뭘 모르겠다는 건지 더 알려주지도 않고 겨우 피아노만 치는 저 순간의 심정이 어땠는지 놀랍게도 기억나지 않았다.


대충 상황만 떠오른다. 레슨 시간에 교수님께 전화가 왔는데 흘낏 보고 안 받았다. 레슨이 끝나고 연습실에 혼자 남았을 때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교수님 추천으로 나갔던 학술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발표문을 고쳐 투고해야 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학교를 떠나겠다고, 여기 사람들과 거리를 두겠다고, 전공에서도 멀어지겠다고 다짐하고도, 당시 눈앞에 당장 남아 있는 마지막 숙제였던 저 투고를 도무지 넘길 자신이 없어서 무너지고 또 무너지다가 마감일을 넘겼다. 최초 마감일이 지나갔는데, 학회원 대상으로 추가 마감일이 새로 잡혔던가 보다. 나는 그것도 몰랐다. 사실 학회 가입 신청서만 받아두고 접수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그 지독한 시간을 더 억지로 이어가기 싫었다. 그래서, 왜 투고 안 했니, 시간이 다시 생겼다는 교수님 말씀이 무서웠다. 시간이 생겼다는 말이 끔찍했다. 더 이상, 내게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냥 이대로 사라지면 좋겠어. 사라지면 안 돼? 모든 게 끝났으면 하는데,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사라지면 되는 거 아냐? 결국 큰 용기를 내서 못하겠다고 하고 끊었다. 더 일찍 해야 했던, 그냥 진즉 하면 되었을 말인데. 무슨 일 있느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답했더라? 죄송하다고 했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쓰는 게 죽을 만큼 힘들다고 왜 단 한 번도 직접 말하지 못했을까. 학교에서는 왜 그럴 수 없었을까. 교수님께 끝끝내 못 전한 말을, 피아노 앞에 앉아 녹음기를 켜두고 혼자 했다. 그건 내게만 가까스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만 들으라는 말이었다. 나만 듣고 조용히 잊으라는 말. 앞으로도 학교에서는 학교가 싫다고 말 못 할 테니. 거기 있으면 죽고 싶어진다고 말 못 할 테니.


그래서, 야 혼자 그럴 거면 좀 시원하게라도 노래하지 그랬어, 멍청아! 이 겁쟁아. 욕이나 실컷 하지! 사는 게 어렵다는데, 그래도 자꾸 살라는데 왜 너만 싫었어 너만 탓했어! 듣는 내내 당황했고 슬펐고 미안했지만, 화가 가장 났다. 그런데 지금의 나도 물러터진 건 마찬가지라, 화도 못 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녹음해두고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수 있다고 여겼으니. 그 모든 녹음은 죄다 미래로 보내는 음성 메시지였으니. 그 미래에 내가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지 못해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예감한 삶의 증거였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들을 발견하고 걔가 이만큼 살고 싶었구나, 그러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알려지길 바랐다. 녹음들이 너무 차갑지는 않길 바랐다. 미래의 나도 이걸 듣고 살게 해주세요. 전에 썼던 녹음 어플에 쌓인 기록을 이번처럼 돌아봤던 오래전의 어느 날, 내가 과거의 내게 크게 위로받았듯. 내가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나로 살아 있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지. 미래의 내가 현재를 살며 과거의 내게 이제라도, 뒤늦게라도 말해줄 수 있다.


사는 게 어렵지? 그런데, 지금도 어렵다! 지금도 내가 낯설어. 지금도 나를 잘 모르겠고. 자주 멈칫하는 내가 싫은데. 이제, 아주 싫지는 않고 밉기만 해 좀 다행이야. 싫어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아 다행이야. 그런데 이거… 다 너 덕분이다? 네가 그때 날 진짜 끝까지 싫어했다면, 음성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겠지? 미래의 나를 그리지 않았겠지? 그래서, 고마워. 실은 그때부터 미워만 해줘서 고마워. 실은 삶이 소중해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다 이고 지느라 고생했어. 낑낑 붙잡고 있느라 수고했어. 그런데도 그때는 싫어했다고만 착각해서 미안해. 미련하게 진짜로 죽으려 해서 미안해.


사진첩에는 내가 사랑한 얼굴과 풍경이 있다. 메신저 대화창에는 내가 사랑한 이들의 소리와 자취가 있다. 죽으려던 때에도 나는 기쁘게든 아프게든 추억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은 언제나 죽음보다 아슬아슬 더 힘이 세, 지난 기억을 들추면 잠깐 그 시간을 다시 살게 된다. 그날의 사랑이 또다시 오늘을 살게 한다. 나는 그 여름 내내 죽고 싶었던 줄로만 기억했는데. 엉엉 울며 녹음을 따라 듣다 보니 서서히 멜로디가 덜 어두워지고 차츰 환해져, 28일에는 뜬금없이 자취방에서 뚱땅뚱땅 “날아라 태극기야 훨훨 날아올라라” 지어 부르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도대체? 새도 비행기도 아니고 왜 태극기였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진짜 날 모르겠지만, 그걸 듣고는 울다 웃었다. 14일에서 28일. 지금 보니 단 두 주 만에 전혀 다른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게 될 만큼 노력하고 있었구나. 매일 틀어박혀 누워서 진심으로 시간만 죽이려 애쓴 줄 알았는데, 살아보려고도 애쓰고 있었구나. 최선을 다했구나.


그럼, 괜찮을까? 앞으로도 내일을 모르는 오늘이 계속되어도 괜찮을까? 그게 최선일까? 여전히 두렵고 막막하겠지만, 또 모르겠다는 노래만 언제고 부를지라도. 내게서 살아남은 마음을 살아남는 마음으로 두고 싶다. 내가 살린 마음을 내가 사는 마음으로 두고 싶다. 살려내는 마음으로 살아내고 싶다.


딱 한 해만 더, 간절히 붙드는 마음으로, 잃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한 번만 더 이기적으로 굴면서,


내년에도 사라지고 싶지 않다.








*  짱 사랑하는 '신여성 작업실'의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사라지기 전에' 숙제로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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