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1/10

1화. 지인들과 해후

by 은명

1화. 지인들과 해후


안창호는 일본 순회를 마친 뒤 정영도를 데리고 2월 20일 인천항으로 귀국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송석준이 일러준 대로 남서울 석정동 집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노독을 풀었다. 안창호는 공립협회 2대 총회장으로 송석준을 모셨다. 송석준은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귀국하는 안창호에게 고국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송석준은 그 후 얼마 되지 않은 1907년 4월에 세상을 떠난다.


이틀 후, 안창호는 제중원으로 김필순을 찾아갔다. 김필순은 세브란스의학원을 다니면서 외과 전문의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김필순은 연통으로 안창호가 동경의 태극학회 환영회에서 감동적인 애국 연설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서 오게. 대환영일세.” 김필순이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뛰어나와 안창호를 끌어안았다.

안창호도 김필순을 반갑게 끌어안았다. 그와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의형제. 의형제란 그런 것이다. 안창호와 김필순은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가까운 형제이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였다.

“어디 보세. 내 형제, 필순이! 자네는 벌써 우리나라 최고 외과 의사라며? 하하하.” 안창호는 친구가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세브란스의학원 출신 외과 의사라니!

김필순이 안창호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을 받았다.

“내년에 졸업하면 정식으로 외과쟁이가 되긴 하겠지. 그나저나 창호 자네는 공부는 포기한 거야? 교육학 박사를 할 줄 알았는데... 구국을 위한 결단인가? 자네의 변화가 궁금하네. 벌써 여기저기서 자네 귀국 이야기로 꽃피우고 있다네. 태극학회 연설 내용을 나도 알고 싶네.”

김필순은 안으로 들어가자고 이끌었다. 두 사람은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김필순은 안창호와 정영도가 제중원에서 숙식할 수 있도록 방을 마련했다. 김필순의 부인은 안창호를 극진하게 예우했다. 두 사람은 김필순의 서재로 가서 마주 앉았다.

김필순이 재촉했다. “그래서 자네가 가져온 비밀문서란 무엇인가?”

안창호는 재는 것 없이 즉각 결론부터 알고 싶어 하는 필순의 성정을 알기에 한달음에 이야기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설계해야만 하네. 시민이 주인인, 자유 공화국 말일세. 한 사람 한 사람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오, 그러니까 황제의 권한이 을사늑약으로 짓밟히고 일본 통감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황제의 나라가 아닌 백성이 주인 되는 그런 나라를 건설해야 한단 말이지?”

김필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한마디 더 거들었다. “말하자면 자네의 비밀 계획은 자칫 역모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거로군?”

안창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응수했다.

“그래서 내가 동경에서 유길준 선생을 찾아뵙고 토론하지 않았겠나? 그 어르신도 근대적인 신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다네. 다만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입헌 군주국가로 말이지. 물론 나는 국민이 주체가 되는 자유 공화국으로 신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필순은 안창호의 원대한 계획에 감탄했다.

“오, 그렇다면 먼저 여론을 형성해야 하겠군. 미국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많은 애국 지식인들이 아직 거기까지 진도는 못 나갔을 거야. 황제권은 무너졌고 어차피 일본의 통감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면 국민이 일어나야 하겠지. 그들이 주체가 되는 새 국가의 모델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 모델이 미국식 자유 민주공화국이란 말이지?”

안창호는 김필순의 뛰어난 상황 분석과 요점정리에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토 통감이 가만두지는 않을 터이고 우리는 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네. 비밀결사. 사실은 미국 동지들과 합의해서 대한신민회를 구상하고 취지문과 통용 장정을 만들어 왔다네.”

김필순은 안창호의 용의주도함에 연이어 감탄했다.

“오, 그것을 비밀리에 드러내려면 비밀결사로 단체를 만들어 가야 하는군. 그렇다면 우선은 선각 지식인들과 접촉이 원활해야 하겠지. 거처가 필요해. 비밀집회 장소 말일세!”

안창호는 김필순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의 배려심은 언제나 안창호를 감탄케 했다.

“그렇다네. 자네 의견이 나와 합치된다면 수일 내로 평양에 가서 차리석과 안태국을 서울로 부를 생각이네. 이 큰일을 우리 둘이 해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하하.”

김필순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그렇지! 그분들이 모두 그립다네. 함께 모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내가 비밀장소를 마련하고, 창호 자네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보며 뜻을 모으세.”

“고맙네, 친구. 자네는 나의 은인일세. 힘이 나는군. 사실은 미국에서 떠나올 때 무척 긴장했다네. 조국의 현실이 일본 통감의 지배권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실은 나라를 잃었다고 생각했네. 대한신민회를 결성할 수 있을까? 국내 동지들이 미국에서 온 내 생각에 공감해 주기나 할까? 뭐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혼란했지. 솔직히 말해서 참담했었네.” 안창호는 자신의 속내를 경청해 주고 있는 친구, 필순의 도량에 감동했다.

김필순은 친형 윤오가 거처하고 있는 남대문 밖 ‘김형제상회’ 2층 다락방에 신민회 사무소를 차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필순의 여동생 순애와 필례 그리고 조카인 마리아와 자매들이 황해도 장연 소래골을 떠나 서울에서 정신여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마련한 거처였다. 안창호는 이곳 다락방에서 신민회 업무를 보았다.


이틀 후 안창호는 『대한매일신보』 사를 찾아가 미주에서 모금한 국채보상금 35원을 전달했다. 문서로 된 ‘대한신민회 취지서와 통용장정’도 꺼냈다. 양기탁은 독립협회 시절 뛰어난 웅변 실력을 갖춘 앳된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던 안창호가 신민회 결사를 결성하자고 했을 때 적지 않게 놀랐다. 처음에 양기탁은 신민회를 공개단체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안창호는 비밀결사 단체여야 함을 설득했다. 일제의 간섭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애국 세력의 결집을 통해 장차 독립운동 추진 세력을 규합해 두기 위함이었다. 안창호는 이념적으로는 공화제와 입헌군주제가 쟁점이 되겠지만 현 단계에서 교육과 산업, 지식 보급 운동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기탁은 신민회 취지서를 박은식, 신채호 등 자강주의자들과 검토했다. 이들은 토론 끝에 신중하게 공화제에 합의하고 세계 통일연합기관 설치를 위한 국내 결사에 동의했다.

3월이 되자 안창호는 고향을 방문하고 여동생 신호 집에서 약 한 달 가까이 머물며 지인들을 찾아다녔다. 여동생 안신호는 김성택 목사와 결혼했다. 안창호는 안태국, 차리석과 재회했다. 또 독립협회 관서지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 만났고 서우학회와 평안도민이 설립한 사범강습소 개교식에 참가하여 애국 연설도 했다. 또 평안도 관찰사로 평양에 와 있던 이시영을 찾아가 만났다. 이승훈 등 민족자본가들의 결사체인 상민공동회 지도자들과도 만났다. 이들 대부분은 안창호의 신민설과 신단체 결사에 동의했다. 이들은 당시 독립협회의 주권 독립, 자유 민권, 경제개혁 등 근대적 개혁안에 대해 공감했던 터라 안창호의 공화제 신국건설 제안은 한 걸음 더 나간 혁명적 개혁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또 을사늑약으로 황제국은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일본 통감에 의한 개혁들은 황국신민화를 촉진하는 정책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입헌군주국 수립은 불가하다고 규정했다. 안창호는 이들과 함께 신민회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해 나가는 종합적인 계획을 설계했다. 동시에 세계 통일연합기관 설치를 위한 청사진을 염두에 두었다. 마침 미주 공립협회에서 북만주와 연해주로 파견된 김성무, 이강 등이 차례로 입국하여 은밀하게 안창호의 신민회 결성을 도왔다. 이들은 대한신민회가 미주 공립협회의 국내지방회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