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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15. 2024

#7. 떡국용 떡이 넘쳐나는 냉장고

명절 후 단상

집안에 식재료를 굳이 쟁여두지 않는다. 집 가까이 마트가 있고 밤늦게 주문하더라도 새벽에 물건이 배송되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면 되고 물건을 정리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니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비행태에도 불구하고 수납공간에는 식재료와 음식이 가득 찰 때가 많다. 주공급원은 바로 부모님이다. 팔순의 부모님은 쌀독에 쌀이 그득해야 마음이 놓이는 분들이다. 쌀뿐만 아니라 장류와 김치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하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장만하셔서 뒷감당을 못할 때가 많다. 해마다 김장이 그러했고 명절음식 또한 그러했다. 먹고사는 게 큰 화두였던 시대에 태어나셨으니 이해는 하지만 넘치는 먹을거리를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부모님 세대와 음식 취향이 다르다 보니 늘 공급과잉 상태다.   


설명절이 지난 후에 우리 집 냉장고와 다용도실에는 양가 부모님이 주신 먹을거리로 꽉 차있다. 땅 속에 저장해 두었던 배추와 무를 비롯해 떡국용 떡이며 과일과 채소가 그것이다. 떡국용 떡은 아마도 우리 가족이 일주일 동안 꼬박 먹어야 소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지만 어머니가 주시는 먹을거리는 웬만하면 군소리 없이 받아서 가져온다. 먹다 지쳐 어쩔 수없이 버릴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가져오려고 한다. 그래야 어머니가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또 겸사겸사 어머니 냉장고 속에 방치된 먹을거리를 비우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다.


원래 어머니는 요리를 힘들어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워킹맘이셔서 바쁜 탓에 생존을 위한 밥상을 차리셨던 것 같다. 몇 가지 메뉴로 단출하게 차려주시는 뻔한 밥상을 마주하면 대놓고 투정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많았다. 푸짐하고 맛깔난 밥상을 차려 주시는 친구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칠순이 넘어서면서 일을 그만둔 때부터 달라졌다. 텃밭에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등 반찬거리가 될만한 채소들을 가꾸면서 장독대에 옹기를 하나씩 들여놓으시더니 다 큰 자식들에게 반찬과 먹을거리를 챙겨주셨다. 별 기대 없이 먹어본 음식들은 의외로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최소한의 식재료로 만들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먹을 때도 먹고 나서도 속이 편했다. 그런 음식을 먹을 때는 마음속에 작은 난로를 들여놓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손맛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와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년에 들어 자식들 먹을거리를 챙기시던 어머니가 올 겨울에는 기운이 모자라서 예년처럼 많은 양의 김장을 하지 못했다. 김장 담글 재료를 다 장만하셨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으셨는지 김장재료를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셨다. 직접 담근 김치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김치가 더 간절했다. 이제까지 얻어먹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머리로는 받아들이려 했지만 마음은 헛헛했다. 그래서 설날 친정집에 갔을 때에는 밥상 위에 놓인 많은 음식들을 제쳐두고 김장김치를 집중공략했다. 제대로 숙성된 시원한 김치를  쌀밥에 얹어먹었더니 체증이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를 본 어머니는 김장을 못해줘서 마음에 걸리셨는지 설 지나고 따뜻해지면 고추장은 지난해보다 더 많이 담아서 단지째 주겠노라고 하셨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작년에 받은 고추장도 많이 남았다고 방어했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하더라도 어머니는 마음먹은 대로 하실 것이다. 연세가 많아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음식도 더 많이 장만하고 계신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천만금을 주어도 구할 수 없게 될 그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어머니도 나도 알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어머니는 넘치도록 많은 음식을 준비하시고 나는 귀찮은 척 사양하느라 바쁘다. 남은 날까지 저장해야 할 그 무엇이 김치나 장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해 질 녘 태양이 마지막 빛을 뿜어낼 때까지 마음속에 차곡차곡 저녁노을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저장하고 쟁여두면 그 이후라도 살아갈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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