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Oct 05. 2023

화사를 막아도 소용 없다.

문제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유튜브에서 화사 공연을 찾아봤다. 자극적이기는 한데, 아이들에게 해가 될 정도로 위험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것도 보지 못하고 샌님으로 자라면 되면 과연 올바른 성 윤리관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온실 속 화초가 강하게 자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화사가 고소당한 걸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적인 콘텐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런 불안감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녀가 성적인 콘텐츠에 빠지면 부모 입장에서도 자녀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여러 과학자들이 지적하듯, 우리는 무언가에 중독되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작게는 유튜브 쇼츠부터 크게는 해외 포르노까지,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불안감과 공허함을 잊기 위해 도파민을 찾아다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만큼, 우리나라 청소년은 성적인 콘텐츠에 중독되기 딱 좋은 처지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에든 중독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성적인 콘텐츠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에 성공했다 치자. 그 다음은 유튜브가 남았다. 유튜브도 검열한다면 게임이 남고, 그 다음은 음악이 남고, 또 마라탕이 남는다. 당장의 괴로움을 잊을 수만 있다면, 사람은 몸과 마음이 망가질 때까지 운동과 설탕에 빠질 수도 있다. 콘텐츠가 얼마나 자극적인가 보다도, 그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가 더 중요한 셈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화사의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탓하는 건 번지수, 아니 도로명을 잘못 짚은 일이다. 화사를 무대에서 끌어내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애니메니션에 나오는 담배까지 모자이크로 가리는 곳이지만, 그런 노력이 청소년을 금욕적인 공부기계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애초에 정부 검열이 구멍 투성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적도 근거도 모호하지만, 어른들은 그저 불안해서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다. 화사 고소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정부 규제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마약과 포르노가 완전히 해금된다면, 가난해서 괴로운 사람들은 장기적인 성장보다 당장의 쾌락에 빠질 수 있다. 과도한 불평등을 막고 사회를 통합하려면, 고소득층에 무겁게 과세하는 동시에 저소득층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이런 상향 평준화를 달성하는 데에 방해될 수 있다. 정부 규제가 중독성 있는 모든 것을 완벽히 틀어막을 수는 없지만, 접근 경로를 어렵게 만들어서 중독이 퍼지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검열에만 의존해서 문제다. 우리나라는 10대 청소년이 마약에 손을 대고 싶어할 만한 상황을 조장하면서 마약을 단속하고 있다. 수요를 창출하는 동시에 공급을 억제하는 셈이다. 그러니 수요 - 공급 법칙에 따라서 마약 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인터넷 방송과 포르노의 가치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한계에 몰렸다. 중독은 그 증상일 뿐이다. 과잉 경쟁을 멈추고 청소년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중국처럼 기본권을 억압하지 않는 한 청소년은 중독성 있는 걸 계속 찾을 것이다.

우리가 막아야 할 건 화사의 공연이 아니다. 정부와 부모가 조장하는 과잉 경쟁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한 번 산업화가 필요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