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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Dec 02. 2024

중년이 위태롭다

그래서 중년을 위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복지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대상은 중년이다.


중년은 사회안전망에서 비교적 소외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예산 거의 전부를 노인과 환자, 학생에게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다수가 정년까지 정규직으로 일하던 시대에 맞춰진, 낡은 체제다. 복지선진국은 진작 새로운 체제로 옮겨갔지만, 우리는 너무 늦어버렸다. 정규직의 시대가 먼저 끝나버렸다.


이제 정년에 은퇴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평균 은퇴 연령도 50세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대다수는 한 달에 300만 원도 받기 힘든 중소기업 아니면 비정규직 근로자라서, 빠른 은퇴에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울 것이다. 평생 과로하던 중소기업 사무직 근로자가 재교육을 통해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로 상향 이직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와중에 중년의 책임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노인과 환자, 학생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문제 크기에 비하면 지출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자녀 교육비와 노후 생활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 부모가 은퇴하고, 반려자가 아프고, 자녀가 취업에 실패하면, 결국 복지제도의 넓은 빈자리를 중년이 채워야 한다.


중년은 한 쪽 어깨에 큰 책임을, 반대쪽 어깨에 큰 불안을 떠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지간한 고소득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그런 중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모한 투자 아니면 사업 뿐이다. 책임에 비해 부족한 소득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편의점과 치킨집이 생기고, 종합부동산세와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던 데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중년이 무너지면 노인, 환자, 학생도 위태롭다. 아무리 국가장학금과 노인요양급여를 확대해도, 학생과 노인 사이에 낀 중년이 무너지면 나머지도 연쇄 붕괴할 것이다. 가족에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복지제도가 발전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나라는 결코 큰 복지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복지지출보다 가족끼리 나누는 사적 복지의 규모가 더 컸다. 복지예산이 많이 늘어난 지금도 불안정한 경제 탓에 가족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다. 그 의존하는 가족이란 결국 중년이다.


따라서 지금은 중년의 불안에 초점을 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세금과 생활비를 덜어주는 방향을 고집했지만, 이런 방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신 은퇴 후 어디로 다시 취업하든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 줘야 한다. 중년 직장인을 위한 고금리 저축을 정책금융 차원에서 도입해야 하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이 모든 정책에 필요한 예산을, 중년을 겨냥한 세금이 아니라 초과이윤세와 공적인 투자 수익으로 충당해야 한다. 특히 국책은행과 국부펀드를 적극 활용해서 세금 외 정부수입을 극대화해야 한다. 물론 비효율적인 현금 복지들을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복지를 먼저 도입한 다음, 보다 개선된 금융투자소득세 등을 도입해야 한다. 중년의 생활안정이 먼저, 증세가 다음이다.


한컴독스에서 직접 그린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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