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피아노쌤 Jul 24. 2024

이름을 잃어버린 사회


사람은 누구나 좋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지.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심지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 클라인비움 -





엄마는 엄마니까. 그래서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불려도 되는 줄 알았다. 아내, 엄마, 언니, 할머니다. 엄마랑 병원 진료 갔다. "유순자씨~" 엄마 이름이 불려졌다. 그 순간 아주 낯설다. 울 엄마의 이름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이름.


엄마는 늘 '엄마'로 불렸기에 '유순자'라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았다. 이후로,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유순자씨, 뭐하고 계시는교?" "여보세요, 유순자님~" 이렇게 부른다. 팔순의 엄마 "야~가, 와카노~" 하면서 웃는다. 


이름이 불린다는 건 그 이름 어딘가에 숨어있는 개성, 고유성, 정체성이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름은 존중이다. "유순자씨~" 엄마가 웃는다.


이름

내 이름을 내가 문자로 쓰는 날이 많지 않다. 예전엔 은행에 자주 가서 예금 입금, 출금할 때 늘 사용하던 이름도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터치 한 번으로 모든 걸 해결하게 되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 후 시험지에 이름을 적어본 적도 오래다.


언제 내 이름을 연필로 적어봤더라? 

계약서 쓸 때, 병원 가서 접수할 때, 또 언제 내가 내 이름을 손으로 적어봤지? 가물거리는 걸 보니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생일이 되면 아들과 남편에게 카드를 적고 이름을 적어본 것 같은데... 그러네,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적어보질 않았네.


이름이 잘 불리지도 않는다. 

엄마 이름뿐 아니라 내 이름도 불러주는 사람이 친구들밖에 없다. 엄마, 여보, 형님, 언니, 선생님, 원장님, 작가님...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많지 않구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이름 속에 포함된 내가 드러나는 순간인데 말이야.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의 이름을 잘 안 부르고 있다는 건가? 

아니, 나는 아주 많이 부른다. 우리 학원 아이들 이름을 매일 부른다. 그러니 내 이름이 불릴 날이 없었구나. 최근엔 김은미 작가님으로 많이 불리고 있네. 은미 선배님... 그래, 지금 내 모습이 이름이 불리는 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사람을 소중하게 바라본다는거네. 그러네 이름을 불러주기전엔 아무런 의미가 없네.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줘야겠다.

유순자...울 엄마부터~ 남편도 동서도 시누이도... 아들도 며느리도 그리고 나의 친구도... 나에겐 모두 꽃이다.


이름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이름한번 찾아보자.

닉네임 말구~ 이름.





                                                     © colynarymedia, 출처 Unsplash




#이름 #엄마 #사회 #글쓰는피아노쌤


매거진의 이전글 84살의 후배님에게 배운 '현역 정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