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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고 오다

by 글담쌤


두 달에 한 번 전국의 문화재와 역사를 탐방하는 모임이 있다.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성남 학습관 동문들이 움직이는 동아리이다. 선후배가 미금역 4번 출구 방송대 성남 학습관에서 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출발한다. 총무가 1달 전에 답사 일정을 공지한다. 꽤나 유명한 우리 답사회는 모임 일정이 공지되자마자 신청이 쇄도한다. 이번에도 24시간 이내에 인원이 마감되었고 대기자까지 줄을 선다. 그 어느 동아리보다 내실 있다고 자부하는 동아리이다.


2013년 3월 결성된 '모란 문화유적 답사회'는 현재까지 두 달에 한 번 진행된다. 코로나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쉰 적 없이 전국을 다닌다.


문화교양학과 명칭에 걸맞게 졸업 이후에도 동문들(재학생 포함) 간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엇을 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방송대 구성원들의 연령대를 고려하여 문화유적지 답사 동아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답사를 진행하면 동문들 간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또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단절되지 않고 문화유적 답사를 통해 지식의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발상으로 문화유적 답사회를 결성되었다



7시 - 미금역 출발

10:30 - 남원 광한루 도착

10:30〜11:40 - 광한루 답사

12시 - 점심(싸리터소머리곰탕)

2:30- 부여 능산리 고분군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 출토지)

3:30- 국립부여박물관

5시 - 부여 왕흥사지(2007년 사리함 발견)

5:30- 승차 출발

7:30 - 미금역 도착



새벽 서둘러 미금역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다. 이미 먼저 도착한 동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7시 7분 출발~~ 이번엔 남원이 첫 행선지다. 남원에 사는 동문이 남원의 맛집 본인의 처남이 운영하는 냉면을 쏘기로 해서 ^^ 그러나 워낙 대기자 많은 식당은 단체 손님을 받을 수없다고 처남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래도 정한 일정이라 남원부터 요이땅~


몇 년 전 아들과 둘이 데이트를 한 곳이다. 크지 않은 아담한 광한루는 방송으로 접해서인지 익숙하고 편안한 산책로 같다.

78세의 왕 언니와 짝꿍이 된 나는 우리 동기인 9기와 함께 짝을 이루어 종일 답사를 다녔다.

광한루에 수많은 사랑의 추억을 쌓고 지난 어느 사람처럼 우리들도 이팔청춘인 때를 그리며 한 바퀴 5월을 봄을 만끽한다.


이번 답사의 핵심은 '백제금동대향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백제의 미와 위덕왕의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가 담긴 향로를 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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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문화의 꽃이다. 당시 백제 문화가 얼마나 융성하게 발전했고 아름다웠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향로를 제작한 위덕왕(창왕)은 성왕의 아들로 당시 충북 옥천의 관산성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관산성 전투는 신하들이 반대했음에도 당시 태자인 창왕이 고집을 피워 전투에 참여하였다. 전장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위문하기 위해 아버지 성왕이 관산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성왕의 이동 계획을 미리 눈치챈 신라의 매복 군에 의해 처참히 죽음을 맞이한다. 전쟁에 승리한 신라는 성왕의 목을 베어 신라에 가져가 관청 계단 아래 묻어두고 밟고 다녔다.(일본서기) 성왕의 몸통만 백제로 돌려보냈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위덕왕은 전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원통함과 불효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제사에 쓰일 향로(백제금동대향로) 제작에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백제 금동대향로라 한다.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예우가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위덕왕의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죄책감으로 승려가 되려 했으나 신하들은 다음 보위를 이어야 한다고 극구 반대를 한다. 위덕왕은 보위에 오른 후 또 하나의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 생긴다. 아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위덕왕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다 먼저 보낸 가슴앓이를 앓고 있었다. 가족의 죽음. 그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터질 것 같은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려 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작품을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보는 내내 맘이 아려온다. 역사적 스토리를 알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알파의 새로운 감동이다


뿐만 아니라. 위덕왕은 아들도 자신보다 먼저 죽는다. 아버지와 아들을 잃고 스님이 되려 한 위덕왕은 자신의 슬픔을 백제의 정신으로 담아 제작한 백제 대향로와 사리함을 후손인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왕이지만 참 안타깝고 슬픔을 지닌 왕으로 기억되겠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말 중에 하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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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다.


탑은 원래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탑에서 유래해 점점 발전되어 하나의 독립된 형태를 지닌 조형물로 자리 잡았다. 탑 속에서 사리나 불교 유물이 많이 나오는 까닭이 된다. 목탑으로 건립되던 탑이 나무가 썩고 부식되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석탑으로 변화를 겪는 과정에 만든 최초의 탑인지라 정림사지 탑은 목탑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기단부 바로 위 1층이 기단부 보다 더 큰 사이즈인 것과 층층이 탑의 끄트머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조형미를 더하는 것은 목탑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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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의 모란문화유적답사 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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