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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Mar 25. 2024

되게 안 맞아

예쁜 카페, 누구랑 가세요?


'쓸데없이 잠자는 시간이 제일 아깝다'는 그녀.

쓸데가 없다니... 쓸데가 너무 많은 나의 수면시간은 9시간이다. 사실 10시간이었는데 요즘 수면의 질이 좋아져 많이 나아졌다. 그 정도는 자야 오늘 기지개 좀 켜지는구나 싶다. 새벽 댓바람부터 웬 철학수업을 듣고 그러면서 8시도 전에 애들 등교준비가 끝났다는 그녀. 애들 보내고 만나자는 시간이 8시 30분이다. 응 안녕, 나는 8시 반 기상해. 우린 안 맞았다.


그럼 오늘 뭐 하냐고 묻는다.

교회모임준비를 해야 되긴 하지만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아니면 글을 쓸 수도 있다. 어디서 할 거 냔다. 집 앞 도서관에 갈 수도 있지만 차로 15분 도서관이 오늘은 당길 수도 있다. 협소한 주차장에 차를 갖고 갈 거냐 해서 운 좋으면 자리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집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럼 내일은 집 앞 도서관에 올 거냐 묻는다. 내일은 갑자기 서울로 신당동 떡볶이를 먹으러 갈 수도 있고(요즘 너무 먹고 싶다) 아님 나의 최애 르뱅쿠키를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어떤 중요한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확실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기분이 끌리는 대로, 끌려야, 하는 나는 정해진 계획대로 하는 것이 힘들다.

일정을 묻는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니 이쯤 되면 그녀가 나를 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아닐 거라 생각해?) 제멋대로에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었고, 만나기로 약속하면 10분 전에 나는 그녀에 비해 10분만 더 자고 싶어 했다. 그러면 그녀가 내게 실망해서 다신 안 만날 줄 알았건만, 뜨개를 하건 책을 읽건 도서관을 가건 나를 기다려줬다. 아 우린 둘 다 도서관을 좋아한다. 다른 엄마들이 모이기만 하면 애들 얘기, 학원얘기, 시댁얘기로 바쁠 때, 책 보러 공부하러 그림 그리러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독립서점이나 북카페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우린 잘 맞았다.


최근 알게 된 브런치 카페가 있다.

빛바랜 우드패널이 외관을 장식하고 내추럴 우드가구에 햇살이 내려앉는 곳. 내가 좋아하는 프렌치토스트에 아이스크림까지 얹어주고, 유럽식 샌드위치가 볶은 커피콩 향과 어우러지는 곳. 혼자서도 잘 다니는 나이지만 근사한 곳을 보니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다. feel 받으면 못 참지. "언니 나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 하루에 만보 이상은 기본, 이만 보도 자주 걷는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나 걸어가자고 한다. 자동차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데 매정한 그녀는 "Nope".


30분 넘게 헥헥 거리며 도착한 카페 [쿠로이시로].

웬 청동? 아니 금빛 호리병 느낌의 컵에 사이폰인지 머시깽인지 커피가 나왔고 우리는 신기한 듯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내가 기대하고 고대하던 프렌치토스트는 시나몬 가루가 뿌려 나오는 걸 또 생각 못했다. 카페오레였던가 시나몬가루를 무조건 뿌려주는 그 어떤 커피(이름 참 안 외워져)와 프렌치토스트는 "시나몬 가루 들어가면 뿌리지 말아 주세요."를 무조건 말해야 하는데, 매번 이렇게 까먹기도 참 힘들 거다. 그놈에 시나몬 때문에 입이 댓 발 나온 나를 보며 음식투정 안 부리고 무엇이든 잘 먹는 그녀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그냥 먹어."


클래식 토스트엔 한입 베어 물면 코끝이 시큰거리는 탱글탱글한 머스터드 알갱이들이 발라져 있다.

그 맛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지만 군소리 없이 샌드위치를 씹어먹는 그녀. 젓가락처럼 길쭉 늘씬한 다리를 소유했지만 보기와 달리 대식가인 그녀는 금세 사라진, 간에 기별도 안 간 빵 쪼가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넌 꼭 쥐똥만큼 주는 데를 좋아하는구나."


쥐똥보단 크잖아요?
 사진에 보이는 그림보다 실물 그림이 훠얼씬 낫습니다. 증명할 방법이 없눼


그녀의 취향은 아랑곳 않고 나는 오늘도 근사한 카페나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녀에게 말을 한다.

구시렁구시렁 대면서도 꼭 같이 오는 그녀


언니, 이번엔 여기 가자!




p.s 이럴 수가.

그녀는 '쥐똥만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내 머릿속엔 왜 쥐똥이 각인되어 있는 걸까. 혼자 느낀 것인가. 저런 말 한 적 없다고 자꾸 지우라는데 작가의 권한으로 그냥 올린다.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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