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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Mar 23. 2024

Prologue 동네엄마, 그 이상

 

네가 그림 그리는 걸 보는 게 좋아.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네가 OO 하고 있는 는 게 좋아" 

스토커는 아니요,

자녀들에게 "네가 공부하고 있는 걸 보는 게 좋아" 이것도 아니고요,


전 두 번 들어봤어요.


첫 번째는 그 기억도 아득한, 연애 도파민이 생성되던 시기였죠.

남편과 서울-지방 장거리 연애를 하던 중이었는데 남편은 회사원, 저는 대학생. 퇴근 후 매일 자기 전까지 통화를 했었죠. 응, 응 대답만 하는 과묵한 성격의 그에게 내 수다가 힘들까 봐 "나 너무 떠들지?" 했더니 "난 네가 떠드는 거 듣고 있는 게 좋아" ( 소뤼 즬러)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한테 말을 안 시켜서 좋았다고. 전친은 자꾸 자기한테 말을 시켜서 너무 싫었다고. 그런 이유였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딴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두 번째는 동네언니한테요.

계획형에 바지런한 J성향인 그녀는 게으르고 충동적인 P인 저와 너무 달랐죠. 처음엔 사실 제가 살살 피하기도 했답니다. 저런(?) 성향의 사람들은 내가 한심하생각할거야, 지레 주눅 들고 피해의식 가었죠.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그녀는 속으로 욕하지 않고(?) 대놓고 구박하며 매일 집에 처박혀있는 저에게 닦달을 했답니다. 좀 나오라고, 집에서 머 하는 거냐고, 바락바락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동네엄마 사이에 편하게 속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앞뒤가 다르지 않은 솔직한 그녀의 잔소리와 타박이 싫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었으면 속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할 신경 쓰느라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녀와 만나면 서로 각자의 책을 펼치고 볼 때가 많았어요. 어느 날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만나서 그림 그리다 문득 "너무 내 할 일만 하는 것 같아 좀 미안하네"라고 멋쩍게 했어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난 네가 그림 그리는 거 보는 게 좋아" 하는 것이었어요. 순간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답니다. (저 남자 좋아합니다)


먹는 것도 성향도 생활습관도 180도 다른데 구박구박하면서도 J언니는 P인 나랑 왜 노는지 모르겠어요. 주로 무계획에 충동적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많거든요. 아마도 내가 그마만큼 매력이 있나 봐요?! 

하얀 가방, 빨간 가방 우리 둘의 가방이에요. 책이랑 그림도구 바리바리 싸매고 누구 가방이 더 무겁나 (늘 그녀가 이깁니다) 경쟁하며 오늘도 우리는 동네에서 만납니다. 약속시간 10분 전 나와 있는 그녀에게 10분만 더 잘게를 외치다가 문 앞까지 쫓아올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우린 제법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그린 우리 가방, 어떤 게 내 가방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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