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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Nov 26. 2024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

친정언니

1일 1회 30분

중환자실에서 허용하는 면회시간이다. 면회가 끝나고 문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병실 안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양손과 발에 주렁주렁 주삿바늘이 꼽혀 있는데 어떻게 전화를 한 건지, 급한 내용일까 싶어 얼른 받았다.


"어, 왜?"

"한 번만 더 보고 가면 안 돼?"

"안될걸? 왜, 더 할 말 있어?"

"아냐. 나갔어?"

"아직. (간호사님, 한번 더 들어가도 되나요?) 아, 안된대"

"알았어. 가라"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도 없었고 생전 아프지도 않던 언니다. 20대 때 364일을 나가 놀다가 하루 된통 술병에 걸려 끙끙 앓으면 다음날 기어나가 술로 해독하 언니다. 골골 앓는 건 항상 나였다. 대학시절, 수업만 듣고 와도 온 에너지를 다 써서 쉬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피곤해서 날마다 감기로 몸살로 드러누웠다. 아프기도 했지만 매일을 무기력으로 골골대며 살아왔다.


마흔 전후로 언니도 나도 어릴 적 상처들이 끄집어내지기 시작했고, 특히 요 근래 1,2년 동안 자신을 깊이 직면하느라 많이 아프던 언니였다. 정신뿐 아니라 몸에서도 명치 쪽이 많이 아파 위내시경을 받으러 갔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심전도 결과 급성심근경색 같다고 급히 응급실로 옮겨졌고 조영술을 하던 중 부정맥이 와서 생명의 위험을 겪었단다(순서가 맞나). 방금 전까지도 나랑 카톡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심정지가 올 뻔 했니, 누가? 소식을 전하는 형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아득하게 느껴졌다.  


응급실에서 온몸이 발가벗겨져 8명의 의사, 간호사가 달려들었다는 긴박한 영화 속 장면을 겪고 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유일하게 허락된 30분의 면회시간을 형부와 함께 들어갔다. 양손과 발에 주삿바늘과 측정기계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버석 마른 낯빛 한 언니가 죽은 듯 누워있었다.


이혼가정 아래, 엄마도 아빠도 의지할 대상이 아니었던 내게 세 살 위 언니는 존재만으로도 든든다. 여덟 살 여름방학, 엄마와 갑자기 헤어져 아빠 따라 서울에 올라왔다. 세상이 무너지는 처절한 슬픔을 느꼈던 열한 살 언니에 비해, 내겐 그래도 슬픔의 자리에서 무릎을 껴안고 웅크려있다가 고개를 들면 바라볼 언니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 괴물에게 잡아먹힌 송강호의 딸(현서)이 괴물의 입속에서 토해졌는데, 마냥 어리기만 한 그 딸이 자기보다 더 어린 남자아이(세주)를 온몸으로 품어 안고 있었다. 그 남자아이, 세주는 그 덕에 생명을 보존하고 살아난다. 언니는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이혼의 풍파에 늘 전면으로 노출돼 있었고 나는 그런 언니의 등 뒤, 그늘 아래 웅크려만 있었다. 언니는 엄마아빠에게 매달리고 말리며 울었지만 나는 늘 뒷전에서 허약하고 의욕 없이 눈물만 흘리고 이불만 만지작거렸다. 괴물의 입에 먹혀 들어가는 그 공포의 순간을, 세주는 보지 못했다. 현서의 품 안에서 눈을 꼭 감고 있었을 뿐이다. 괴물의 이빨과 타액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건 현서였다. 언니는 내게 현서가 되어주었다.





각자의 상처로 인해 의좋은 자매사이는 결코 아니었던(과거형이다) 우리 사이에, 한 번만 더 보고 가면 안 되냐니 왜 그런 찝찝한 소리를 한 것인지 영 마음에 걸려 나중에 물어봤다.


"도대체 왜 그런 소릴 한 거야?"

"그게 마지막일까 봐 그랬지."

"......"


그날 언니는 형부에게 전화를 걸어 형부와 애들 셋은 물론 나에게까지 유언남겨놓았다.


[oo이한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고 전해줘.]


정신과 약을 먹느라 감정의 요동이 없는 내게 힘 없이 이어지는 언니의 목소리는 결국 내 눈물샘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언니가 중환자실에 누운 첫날 핸드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보낸 마지막 카톡은 이거였다.


[머해. 죽으면 죽는다?]


아직 내 손에 죽기 싫은 언니는, 퇴원 후 여전히 또 나랑 같이, 어릴 적 못 채운 G랄 총량을 열심히 열심히 채우고 있다.


일반병동으로 옮긴 다음 날 진료 보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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