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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빨래를 널다가

by 그리다 살랑 Dec 27. 2024
오래전 야심 차게 칠했던 칠판페인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끄적여본다오래전 야심 차게 칠했던 칠판페인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끄적여본다


메리크리스마스!


그렇다, 이 그림에 인사를 하려고 열심히 색연필을 놀려댔건만 애당초 그림을 시작한 날부터가 촉박했다. 뭘 그릴지 마음에 결정을 짓는 건 왜 꼭 마감날(25일)이 임박해서일까. 이브날 그리기 시작해서 26일 완성한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또 이틀이 지났다. 두어 시간의 글 쓸 시간이 있었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왜일까? 아무 말이나 나불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아무 말이나 쓰지 않으려니 아무 말도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몇 개월째 계속됐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분위기가 겁나 싸해
아무 노래 by 지코


왜 그리 다운돼 있었던지 뭐가 문제인지 무슨 감정인 건지 글로 풀어내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태로 글을 쓴다면 그저 내 감정을 '배설'하는 것에 불과한 것 같았다. 적어도 내 글과 그림에 호의를 갖고 구독해 준 281명에게, 실제로 내 글을 읽는 몇몇 분들에게 최상의 것아니어 최소한의 글다운 언어와 감정들을 보여주 원다. 하지만 정수가 되려면 먼저 쏟아내야 하는 것을.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거의 6개월 가까이 다운돼 있다가 드는 생각은, 의욕이 날 때까지 더 이상 기다릴 순 없다는 것이다.


출산 초기 매일같이 쌓이는 설거지거리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며 인생에 감당할 수 없는 짐인 것 마냥 매일이 버거웠다. 설거지할 그릇들이 엉망진으로 쌓는데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우는 나에게 교회 집사님은 "무슨 특별한 방법 없어. 이걸 어떻게 하지, 쳐다볼 시간에 일단 그냥 시작하면 돼. 위에 것부터 한 개씩 하면 돼" 설거지를 할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설거지는 그냥 하는 것이다.


사실 '일단 시작하기'는 많이 해봤다. 그럴 때마다 흐지부지 마무리를 못해 자괴감에 빠졌다. 무작정 시작하기도 평상시 준비된 사람이어야 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경험이 쌓였고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이번에도 글이 써지지 않는 침체기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중도포기할까 봐, 불성실함이 드러날까 봐, 그저 감정을 배설만 할까 봐,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한탄만 할까 봐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질까 봐, 글솜씨가 벌써 바닥이 난 걸까 봐 어떤 말도 쓰지 못했다. 혹시라도 내 글이나 그림에 관심이 있어서 혹시라도 작은 일이라도 맡길 생각이 있어서 왔다가 감정의 배설만 가득한 한탄과 부정의 들을 보고 어이쿠, 이런 사람이랑은 가까이하지 말아야지 하고 도망갈까 봐 두려웠다. 알고 있다, 지금이 웃음포인트라는 걸.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는 중이다. 이 말 누가 만든 말이야 너무 뼈 때리잖아.


그러니까, 힘을 빼고 쓸라고 하지 말고 일단 그냥 써보자고. 설거지를 잘하는 특별한 방법 따윈 없다고. 일단 위에 있는 그릇부터 한 개씩 씻어내면 된다고. 크리스마스에 여전한 방식으로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이 장면을 그려야지 생각이 들었고, 그림에 맞춰 글을 쓰다가 매일 일기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의욕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그래야 될 때도 있겠지요) 여전한 방식으로 습관처럼 그냥 한 번 써보자. 일단 한 달만 도전이다.


매일 그림을 동반하진 못할 것 같다. 간간이 그리게 되면 동반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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