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든 걱정 인형

모범생이 될 거라는 말은 나를 믿어주세요!

by 바스락

아이야,

너의 살냄새는 여전히 젖내를 품고 있는데 엄마는 너를 다 큰 어른으로 보고 있더라. 생각이 영글지 않은 네가 이해되지 않았고, 학원 가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네 모습에 화가 났단다. 너를 보지 않고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을 보고 있었더라.


엄마는,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었어.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머릿속에 항상 ‘꿈’은 화가였단다. 막상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숨 쉬듯 ‘간호사’ 요라고 대답했어.

나이팅게일 (Nightingale)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천사 같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툭 던졌던 말이야. 그 당시 ‘간호사’가 꿈이라고 하면 엄마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거든.


장래 희망란에 ‘간호사’라고 적었고 그 의미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어차피 꿈이란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엄마 마음속에 왜 ‘화가’가 꿈틀거렸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 대답은 매번 입을 통해 나오는 답과 달랐단다.


그렇게 엄마는 ‘꿈’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단다. 그래서 네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투정 부리고, 짜증 내면 화나고, 한숨부터 내뿜게 되더라.

“엄마는 왜 맨날 나만 차별해”

"내가 사고뭉치라서 내 이야기는 안 들어주고, 누나한테만 다정하게 말하는 엄마 싫어"


침대에 누워 투정 부리듯 툴툴거리는 너를 안아줘야 했는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더라. 누나 방에서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누나 볼에 뽀뽀하고 나오면서 소파에 누워 있는 너를 보고 '그만 자자'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엄마 표정을 너는 보았을 텐데, 웃음기 사라지고 짜증 난 표정이었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게임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난 건지, 오후에 전화로 징징거렸던 순간에 느꼈던 화가 풀리지 않았던 건지, 반응 없는 엄마 모습에 화가 났는지 침대에서 등 돌리고, 맘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내 행동에 긴 한숨만 내쉬었어.


“엄마 잘 자! 사랑해”


등 돌린 네 어깨가 흔들리면서 들릴 듯 말 듯 사랑을 속삭이는 너,

엄마가 잠시 멈칫한 순간 “엄마, 사랑해”


다시 한번 마음을 전하는 떨리는 네 목소리.

엄마도 꾹꾹 마음을 담아서 “엄마도 아들 사랑해” 그 순간이었어.

등 돌리고 있던 네가 고개를 돌려 “팔베개”

너와 나의 팔베개는 쌓인 감정을 녹아내리는 얼음 같은 거였어.


언제나 잠들기 전 감정을 한 번씩 쏟아내는 아들,

엄마는 그런 네 모습에 매번 지쳤단다.

왜 꼭 잠들기 전에 힘든 감정을 주고받아야 하냐며 타박만 했어.

잠들기 전에 털어 내고 싶은 감정,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피곤한 엄마 감정에 더 몰입되어 쉬고 싶었어.


화나고 짜증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팔베게'를 원하는 너


너는 매번 엄마에게 말하고 있었어.

너만의 언어로 너만의 표현 방식으로 엄마 나 좀 봐주세요!

나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엄마는 그런 너를 걱정 인형이라 생각하고 표면적인 대화만 주고 받았단다.


정작 매번 엄마에게 먼저 ‘팔베개’를 요청하는 건 너였는데,

진짜 네가 하고 싶은 말에는 관심이 없었고 무작정 떼쓴다고 생각했어.


아이야,

엄마 어릴 적 모습에서 지금 네 모습과 행동,

말투를 생각하고 너를 걱정 인형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아.


너의 장점은 당연하고,

너의 단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이었어.

매번 감정이 먼저 너를 보고, 생각은 나중에 하니

엄마의 착각은 걱정이 되고, 한숨이 되었단다.

너와 상관없는 엄마의 걱정이 너를 키우고 있더라.


“엄마, 문제집 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엄마는 매일 바빠서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문제집 풀겠다며, 네가 하는말에,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엄마는 또 너에게서 문제를 찾고 있더라.

...

...

...,

그런 엄마에게 잠들기 전 네가 했던 말,

나는 이제 모범생이 될 거야


아이야,

네가 걱정 인형이 아니라, 엄마가 걱정 인형이었어.

중학생이 되어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너를 보면서

매번 걱정거리를 찾았던 건 엄마의 불안한 감정이었더라,


축구를 잘하고 싶다고 아침 7시 20분이면 운동화를 챙겨 학교 가는 너를 보면서

친구들 학원 갈 시간에 운동장에서 혼자 축구하고 왔다며 검게 그을린 너의 얼굴을 보면서

매번 너보다 한발 먼저 가서 잘 따라오기만을 기대했던, 엄마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단다.


그냥 꿈이 아닌 진짜 너만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하며, 기다려 주기로 했어


모범생이 되겠다는 네 말이 '나를 좀 믿어주세요'라는 네 마음의 다른 표현은 아니었을까,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안 주는 것이다.지각있게 칭찬하고, 지각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아들#대화#팔베게#생각#믿음#

이전 22화사랑의 탄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