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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Sep 23. 2017

제주 단상

김녕 앞바다

 1.

낮의 김녕 앞바다는 그날 낮만큼 찬란했다.


 발만 담구기는 아무래도 아쉬워 신발을 벗어던지고 밀려 들어갔다. 바닷물이 턱끝에서 위태하게 넘실거렸다. 발을 동동 굴려야 겨우 수면 위에 얼굴을 놓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물을 먹으면서도 드러누워 하늘을 보기는 아쉬웠다. 팔다리를 내젓느라 벅차게 숨이 차올라도 고개를 꼿꼿이 세워야만 사람을 볼 수 있었으니까. 이것이 내가 당신 곁에 머무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조금 처량하지만 낮이 밝아서 괜찮았다.

2.

밤의 김녕 앞바다는 그날 밤만큼 까맸다.


 겹겹이 쌓인 파도만이 달빛을 받아 희멀겋게 빛날 뿐이었다. 하얀 선들은 차례대로, 끊임없이,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육지 쪽으로 밀려들었다. 하얀 선 하나가 달려들어 모래 속으로 사라지면 또 다른 하얀 선이 뒤쫓아왔다. 앞선 선이 스며든 자리까지는 닿지 못하고 지워지기도, 그보다 훨 나아가 새로운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해안선은 바뀌고 있었다. 

 해안선을 정하는 것은 바다와 육지의 일이라 생각했다. 닿고 싶은 자와 닿아지려는 자가 부딪혀 피어난 것이 파도의 하얀 포말이라 생각했다. 떠나려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의 온도 차이가 일어낸 거품 또한. 선을 만들어내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변형시키는 것도.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오롯이 바다와 육지의 의지냐 하면, 모르겠다. 어쩌면 해안선을 정하는 것은 바다와 육지의 일이 아니라 단지 달의 놀음일 뿐일 지도 모르겠다.

3.

새벽의 김녕 앞바다는 연필로 박박 지운 자국만큼 까맸다. 열 맞춰 긋지 못해 희끗하게 비치는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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