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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당주민 Jan 01. 2024

추억도 향수도 아닌데 왜 그 시절을 공감하고 있을까?

소년시대를 다 봤다

우리집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를 구독한다.

넷플릭스는 킹덤 1을 보려고 가입한 이후 꾸준히 구독하고 있고

디즈니플러스는 핸드폰 요금제의 부가서비스로 

쿠팡플레이는 와이프님의 와우 회원 덕분에 보고 있고.


근데 나는 OTT를 끊은지 오래됐다. 

OTT를 보는건 해외출장 갈 때 다운받아 비행기에서 보는거 빼고는 평소에 보지 않는다.

어느날 새벽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정말 그날로 OTT를 손에 놔버렸다.

그리고 책을 집었다. 

지금은 출근해서 30분 자기 전에 30분 그리고 주말은 책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이게 습관이 되었다.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한가지 중 하나가 습관이라고 한다.

해내는 습관과 포기하는 버릇 사이에서 인간은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나마 22년 어느 날 책을 읽고 OTT를 끊어버린 이 습관이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 24년 첫 날 뿌듯하게 생각하며 글을 이어 나간다.


근데 '소년시대' 이 포스터를 보고 인터넷에서 잠깐의 관련 글을 읽고

와이프님에게 바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공유 받았다. 느낌이 있었다. 보면 후회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첫 회에서 또 새벽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잠깐의 책 읽기를 중단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잠은 잠대로 잘자고 할 것 하면서 나름 잘 조절하고 10회까지 보게 되었다.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난 그 시절의 고2 학생들의 이야기다.

난 베이비부머는 아니지만 딱 그 시기의 끝자락에 태어난 세대이다.

제목에도 썼듯이 이 작품에서 추억도 향수도 느끼지 못했는데

공감이 간 것은 아마도 그 시절 남은 작은 잔재들이 

내 어릴적부터 고등학교 삶의 추억을 소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그랬을 것 같다. 부여라는 도시에서는.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한터라,

농고는 모른다. 서울에는 인문계, 공고, 상고까지 있었다.

그 시절 고등학교 시절은 어느 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 역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고를 간 친구들에게 공고가 인문계에 비해 얼마나 섬뜩한 곳인지 전해 들은 적은 있다.

좀 과장은 있었을 것이지만.


어릴 적에 누구를 때린 적은 없었다. 근데 맞은 적은 있다. 적은 괴롭힘도 당했고.

그게 학교를 다니기 싫은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재미있는 추억이 있다. 어릴적 주인공 병태의 모습을 보며.

국민학교 (난 국민학교를 나왔다) 5학년 때였다. 아직도 그때가 엇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난 어릴 적 키가 작았다. 중학교 때 갑자기 커서 지금은 평균 수준이지만.

1,2번째 줄을 벗어난 적이 없다. 작았고 외소했고. 그 비슷한 친구들끼리 친했다.

맨 마지막 줄에 앉아있던 친구가 있었다. 덩치가 컸다.

그 친구는 1,2번줄에 앉은 우리를 괴롭혔다. 

그 빈도가 심해질 무렵 작은 덩치의 우리들끼리 이 부당함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했고

어느 날 드디어 결심하고 그 덩치의 친구를 학교 인근의 공터로 불러냈다.

5~6명이 그 덩치를 둘러 쌓고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 같이 돌진하기로 했는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던 순간 그 덩치의 친구가 갑자기 한명에게 달려 들어 때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우리들은 갑자기 누군가의 함성에 맞춰 다 같이 달려들어 그 덩치를 집단으로 

때려 굴복 시켰다. 

그 무섭던 덩치는 집단으로 덤비자 한동안 맞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쭈쭈바를 사줬다. 돈이 충분하지 못해 쭈쭈바를 반으로 갈러 다 같이 먹었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 기억이 났다.


이런 이미지가 가장 잘 묘사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선생한테 맞았던 기억 외에 친구들간의 폭력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의 폭력도 친구들간 폭력을 심리적으로 용인하게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때리고 맞는게 너무 일상적인 일이었으니까.


노는 애들은 고등학교를 1년 꿇고 들어온 애들 중심이었다.

말을 좀 거칠게 했고. 그러던 어느 날 덩치가 큰 반장이랑 시끄럽게 하는 애들간의 싸움이 있었던 적도 있고.

기억 나는 건 그 시절 워크맨. 

소년시대에서도 소니 워크맨이 나오는데 나는 집에서 고1 때 사줘서 소내 워크맨을 들고 다녔다.

야간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한다고 매일 잡혀있었는데 그때는 워크맨 밧데리가 오래 버티지 못하던 시절이라

충전해 놓고 집에 갈 때 20분 정도 노래 듣고 가려고 했는데

맨날 자기만 하던 고등학교 재수생 형이 워크맨 좀 빌려달라고 하는데 그때 참 마음이 안좋았던 기억이 있다.

속상한 마음이 글을 쓰는 지금도 느껴진다.


속상했던 워크맨의 기억

이때 병태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라도 짝사랑했던 정말 그 지역에서 가장 이쁜 애가 2만원을 빌려달라고 했고

내 수중에 2만원이라는 돈이 있었으면 줬을 것 같다. 난 찌질이였던걸까?

아마도 순응하는 삶을 강요받던 시절에 뇌에서 순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아니요를 못했을 것 같은

변명을 해본다. 그 시절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작품의 해핑앤딩으로 가는 서사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겪은 그 시절, 평화의 5학년 8반을 만들어던 그 서사.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만나서 반나절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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