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그런 Feb 02. 2024

2. 기간제 교사인 내가 눈 떠보니 인기폭발?

프로의 세계가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요

 임용 합격 후 적체 인원이 있어 바로 발령을 받지 못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할 틈새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집 근처 학교에서 기간제를 해 달라는 전화였다.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급하다는 교감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알겠다고 답했다.

그 해 2월 말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내게는 신규발령이나 마찬가지였다. 교감은 자리에 앉히더니 과학전담 외에 업무가 있다고 했다. 군대 간 선생님을 대신해 방송 업무를 해야 한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방송 업무는 어떻게 하는 거지? 교감은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렵지 않다고 했다. 도장을 찍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배정받은 학년으로 향했다.


 학년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은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업무분장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기에 종이를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선생님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앞에 둔 것치고는 살벌한 대화였다.

"000 선생님은 업무가 이게 뭐야? 화단 관리?"

"아니 누구는 이렇게 쉬운 업무를 주고, 누구는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어?"

다들 불만이 가득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알지도 못했던 학교 구성원들의 개인사정과 함께 업무분장에 대한 불평을 토로했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24살의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난감했다.

'선생님들은 원래 다 이런 건가?'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를 시전 했다. 익숙해질 때쯤,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과학 전담이라고?"

내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또다시 불평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체육 전담 달라고 했는데 왜 또 과학 전담을 주는 거야?"

"몰라, 회의 때 얘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난처했다. 내 얘기였으니까. 무서운 대화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얘, 부장님은 어디 있어?"

"부장님한테 얘기하자. 부장님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가서 체육 전담으로 바꿔달라 그러자."

당황스러웠다. 나는 체육이라면 쥐약이었다. 실습 때도 한 번도 체육은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체육 전담이라면 계약하지 않았을 거였다.


"부장님!"

한다면 한다는 그 부장님이 연구실에 나타났다. 학년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나를 체육 전담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부장에게 교감한테 잘 말해보라고 했다.

"그래도 처음 왔는데 체육 전담은 좀..."

유일하게 한 선생님만이 곤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강한 주장에 더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나의 의견 같은 것은 물어봤을 리 만무했다. 부장님은 연구실의 의견에 끄덕이며 교무실로 힘차게 내려갔다. 역시 부장님이라며 그들은 눈을 반짝였다. 나는 힘이 쭉 빠졌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어울렸다. 나를 두고 벌어지는 이 상황, 의도치 않게 인기폭발인 이 상황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벙쪄있었다.

'체육 전담을 해야 하는 건가? 아까 도장도 다 찍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앞에 두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건가? 내 의견도 중요한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무척 나빴다. 하지만 앞으로 같이 일한다고 생각하면 티 낼 수 없었다. 원래 이런 건가에 대한 의문만 가득했다. 그래서 그저 체육 전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며 부장님을 기다렸다.


"어떻게 되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부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 된대."

"왜요?"

"과학으로 계약한 거라 안 된대. 이미 계약을 해서."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나와 달리 연구실의 분위기는 싸했다.


 집에 돌아오자 더욱 걱정이 되었다. 학교가 무서웠다. 말 못 하는 신규 하나로 편하게 지내려는 모습, 다들 하이에나같이 느껴졌다. 내가 그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임용고시가 끝나고 즐거워야 하는데 휴일을 즐기지 못했다. 3월 1일이 오는 게 무서웠다. 


악몽에 뒤척이던 날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3월 1일 자로 발령이 났으니 교육청으로 오세요."




그 당시에 썼던 블로그 일기의 한 구절. 시수도 늘리라고 했었구나. 앞에서는 말 못 하고 일기만 썼었다.



9년차인 지금은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 과학이나 도덕 전담보다는 사실 체육 전담을 해주는 게 담임 입장에서는 훨씬 도움이 된다. 업무분장 시 불만이 있는 점도 이해한다.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배려해주는 일이 많다보면 다른 이들의 업무가 힘드니까. 나 또한, 배려받기보다는 배려해야 했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후배 앞에서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던 그 사람들을 납득하긴 어렵다. 


PS. 혹시 이 글을 읽고 기간제를 망설이는 예비 선생님들! 

제가 일하면서 저런 일을 겪은 적은 이후로 한 번도 없으니 걱정 말고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응답하라 2023 6학년 2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