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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두툼 Oct 25. 2024

시어머니의 가방에서 나온 앞치마



드디어 대망의 결혼 후 첫 명절인 설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신 어머님은,

전날 마련해 놓은 전 13가지 가운데,

더욱 색 곱게 구워진 튀김과 전을 고르고 골라 광주리에 담고, 집에 있는 금빛 보자기를 꽉 묶으셨다.


명절 전부터 전화로 한복 말씀을 하셨던 터라, 한복이랑 정장은 잊지 않고 챙겨 온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전이 담긴 바구니를 챙겨 큰댁으로 출발했다.

차례나 제사에 참석지 않는 시누이는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우리를 배웅했다.


시댁에서의 거리를 몰랐던 큰어머님댁은 정말로 가까웠다.

차로 10분 거리이니 말 다했다 하겠다.


결혼식 때 뵙고 이주 만에 다시 뵙는 큰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며, 집에 들어서니

나보다 일 년 먼저 결혼하셨다는 큰어머님댁 며느님과 큰어머님이 상을 차리고 계셨다.(뭐라고 호칭을 드려야 될지 아직도 모르겠다.ㅠㅠ)

나물도 놓고, 밤도 올리며 한참 차례 준비 중이셨다.


출처-이효리 님 인스타


눈치가 빤한 지라 상 차리는 걸 도우려고 싱크대 앞에 섰는 내 뒤로 쓱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바로 시어머님.

본인 댁에서 나서기 전부터 가방에 챙겨 온 끈과 앞치마를 꺼내어,

1차로 새색시 고운 치마를 위로 올려 밟히지 말라고 질끈 끈으로 묶어주시고는,

2차로 앞치마를 끈 위에 둘러 풀리지 않게 바짝 묶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들의 짝인 며느리를 뭘로 생각하신 걸까.

지금도 모자라지만, 그때는 더욱 모자란 나는 '내가 앞치마를 써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을 안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큰어머니, 또 그 댁 며느님께 민망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생각으로 어머님은 그렇게 알뜰히 끈에, 또  앞치마까지 본인 가방에 살뜰하게 챙겨 넣으셨을까.

너무 궁금하지만 어머님 속에서 나온 아들에게도,

어머님 본인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언제쯤이면 그때의 마음을 물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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