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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pr 22. 2024

엄마의 '봄'나물

"잘 먹을게! 북극곰!"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북극곰(엄마를 부르는 애칭)이다.


"어~ 북극"

"뭐 해~"

"레슨 받으러 왔어~ 북극곰은 뭐 해?"

"아, 나 너 주려고 쑥국 해놨는데, 가져가서 먹으라구~ 나중에 올 때 전화 해~ 꼭 잊지 말고 와!"


 며칠 전부터 봄나물로 만든 음식이 당겼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입맛을 다시며 전화를 끊었다. 레슨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가 낮에 하던 청소를 마무리하고, 30개월 따님과 놀아주고 나니 어느덧 시계는 밤 12시를 향해 달려갔다.


"아 깜빡했다. 깜빡했다. 나 쑥국 좀 가져올게~"

 역시나 오늘도 깜빡했다. 꼭 잊지 말고 오라는 엄마의 말은 나를 너무 잘 아는 멘트가 아니었을까.


 아직 바뀌지 않은 비밀번호 4자리를 2002 월드컵 응원 박자에 맞춰 눌렀다. "띠~ 띠 띠 띠" 이렇게 누르면 엄마는 아들인 줄 금방 안다. 한 번은 정박으로 비밀번호를 눌렀더니 깜짝 놀란 적이 있어, 현재까지도 꾸준히 애용하고 있다.

 집에 들어가니 쑥국 외에도 북극곰에게 잡혀 온 온갖 푸른 봄나물들이 주방 앞에 널브러져 있다.

"잉? 아직도 안 잤어?"

"너 기다린다고 있었지~"

"아 미안 미안 깜빡했어."

"으이그~ 그럴 줄 알았다. 와서 이거 좀 싸가"

"와~ 이게 다 뭐야~ 죽순 먹고 싶은데 혹시 죽순도 있어?"

"어~ 해 놨는데, 가져가서 먹어봐"

"진짜?!! 대박!!"


 반찬통을 받아 든 나는 그 자리에서 절반을 비워버리고 말았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엄마의 봄나물이 생각난다. 많이 짜지도 많이 쓰지도 않은 고소한 향이 코를 찌르고, 고기반찬이 없어도 밥이 뚝딱 넘어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봄나물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은 많은 얼어있는 것들을 녹인다. 상처투성이에 가시 돋친 말만 쏟아내던 시절, 무너지다 못해 깔려 짓눌려버린 마음도 '봄'이 되면 잠시나마 회복되곤 했다. '봄'이 있기에 '겨울'도 희망은 있었고 '봄'이 오기에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지금 엄마의 '봄'나물은 삶에 허기진 나의 마음을 채워줄 진짜 보약이다. 이제 내가 엄마에게 '봄'을 가져다줄 차례다. 서툴지만 하나씩 하나씩 전수받아 엄마의 '봄'을 갚아드리고 싶다.


  무거운 세월을 이겨내느라 '봄'이 오는 것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셨을 엄마에게
 이제... 나의 '봄'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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