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교통사고가 났다. 운전을 꽤 오랫동안 했지만 상대차량과의 교통사고는 한 번도 난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내게도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상대차량은 1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며 교차로 상에서 바로 2차로로 끼어들었고, 동시에 2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던 나는 회전반경을 의식해 크게 돌았으나 주행이 막히고 말았다. 그 차는 10초 간 그대로 멈춰서 가지 않았고 나는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클락션을 울렸다.그 차는 교차로 상에서 급차로 변경을 시도하며 2차로 상 차량의 주행을 일부러 막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나는 1차로, 그 차는 2차로 동시에 주행하던 중 상대방 차가 내 차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야간인 데다 이유 없는 차선변경이라 미처 회피하지 못했다.
차주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차를 세워 알렸다. "사장님, 제 차를 치셨어요?", (일단 아저씨는 다 사장이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몰라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사장님, 차를 치셨다고요" 그러자 그분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저기 신호 받고 좌회전해서 차 대소" 피해자는 나인데, 학교선생님께 꾸지람을 듣는 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따라오라고...?'
차에서 내린 남자는 사진을 찍더니 첫마디를 던졌다."지금 바쁘니까 내일 블랙박스 보고 이야기 합시다" "네? 사과부터 하셔야죠... 일부러 차 미셨잖아요...", "아니 여기서 이럴게 아니고, 저 지금 출근해야 하니까, 내일 블랙박스 보면, 누가 잘 못했는지 나오겠지", "네?", "좌회전할 때 2차로가 직좌가 가능해도 1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차를 막으면 어떡합니까?", "네? 그 말씀을 왜 하시는 거죠? 그리고 저는 크게 돌았는데, 사장님이 좌회전 직후에 차로변경 방법을 위반한 후 제 차량을 막고 안 가셨잖아요"(보복운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운전경력은 많아도 대물 사고는 처음이라 이 바닥(?)을 잘 몰랐는데, 한문철 변호사에서나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라이브로 펼쳐지니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날 보험접수를 하고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렸다. 나의 사고사실을 안 주변인들은 억울하겠다며,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면 나도 똑같이 조언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니, 싫었다. 그 운전자의 생계도 중요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위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마음이 다치는 결정을 하기는 싫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일을 겪고, 그것을 보상받고자 상대를 밀어붙이면 분명 그 고통은 내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말 것이다.
어머니는 회사택시를 운행하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겪는다. 하루라도 쉬면 생계가 곤란해지는 탓도 있지만, 무리하게 진료를 받아 상대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신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 옆에서 보는 나는 답답해서 가슴을 퉁퉁 치지만, 이제 겪어보니 나도 똑같구나 싶었다.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화는 났지만 "고장 난 부분에 대해 보상만 정확히 해주시면 좋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운전자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소속 회사 대표가 보내준 영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내용을 다 쓸 수는 없지만, 참으로 교묘한 말투였다. 다시 한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었다.
"다음에는 서로 안전 운전합시다." 귀를 의심하며 말씀을 고쳐주었다. "사장님, 이럴 때는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아~ 나는 뭐 나도 잘못하기는 했는데, 같이 운전을 조심하자 이거지"
이제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가치를 못 느끼고 마무리 지었다. 회사대표에게는 '고생 많으시다, 교육을 잘 부탁드리고, 빠르게 연락 주시고 처리해 주셔서 고맙다 '라고 말씀드리니 그분은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라며 사과했다.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연세가 좀 있으셔서 쉽게 사과하기 힘들 텐데... 이해합니다."
이번 사고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가해자의 확실하고 완전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의 정신건강만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법률상 과실이 제로에 가까워도 말이다. 영상과 음성 같은 증거가 남아 있어도 아무 소용없다.
확실하고 완전한 사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할 걸 포기해야 내 마음이 안 다친다고 빠르게 끝난다.
내가 베푼 작은 배려는 내게 생긴 상처를 치료해 주는 연고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 상처도 언젠가 아물어, 언제 그랬는지도 모른 채 회복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