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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23. 2024

멀리 있으면 작게 보이는 것

거대한 은하를 잡아먹는 작은 성운처럼...

 새해가 밝으면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이 있다. 서로 둘러앉아 한 해의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오래된 전통은 아니고 작년부터 시작한 일이라 이번이 두 번째지만 꽤나 반응이 좋다. 

 참고로 작년 목표 달성률은 20%로 가족 5명 중 2명은 실패, 2명은 목표가 기억이 안 나고, 1명만이 성공했다. 올해는 잊지 않기 위해 일기장에 모두의 목표를 적어 놓았다. 나는 실패한 두 명 중 하나라 올해는 작년 목표에 작은 일을 하나 더한 재 도전이다. 


  목소리도 크고 말도 많은 나는 항상 주변에 내가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 새로 시작한 일들을 떠들고는 한다. 이번에는 발레를 시작했고 다음 주부터는 코딩을 공부해 볼 거고 얼마 전에는 식물을 새로 들였다는 이야기들이 가득이다. 

  하지만 대게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일이 그렇듯 흥미가 떨어지면서 이른 끝을 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행동 양상을 '찍먹'에 비유하고는 한다. 찍어 먹는다의 준말인 '찍먹'. 한 가지를 진득이 하지 못하고 맛만 보는 나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찍먹인간인 나. 과연 올해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오른쪽의 거대한 성운이 왼쪽은 작은 은하를 곧 삼킬 듯 입을 벌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성운은 은하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알록달록한 색과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성운'은 천문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우주 공간 속 먼지들이 뭉쳐진 성운은 어린 별을 태어나게 하는 아주 크고 멋진 천체다. '은하'는 이런 성운들을 포함한 다양한 천체들의 거대한 집합이다. 우리은하에는 수 천 억 개의 별이 모여 살고 있다.

  나는 종종 우주를 설명할 때 하나의 세계로 비유하고는 하는데, 우주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은하들을 나라, 은하 속의 별들을 주민으로 하면 꽤나 잘 들어맞는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같은 이웃나라의 천체들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관측할 수 없다. 이웃나라 은하 안의 성운과 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눈으로 찾을 수 있는 별과 성단, 성운들은 모두 우리은하 안에 있는 가까운 천체들이다. 천체 사진 속 아름다운 성운들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성운들은 모두 우리은하 안에 있는, 나름은 가까운 동네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천체들의 거리감을 알고 나면, 아름다운 사진 속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속 성운(CG4)은 여느 성운처럼 우리은하 안에 위치한다. 긴 꼬리를 가지고 있어 혜성형 구상체라고 불린다. 그 모양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린 뱀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와는 1,300광년 떨어져 있다.

 반면 성운이 잡아먹으려고 하는 은하(PGC21338)는 1억 4천만 광년 거리의 깊은 우주에 있다. 무려 '1억 4천만 광년' 멀리 있는데도 이 은하는 성운만큼이나 선명한 존재감을 가진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분명 성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다랗고 눈부신 천체일 것이다. 그저 멀리 있어 작게 보일 뿐이다.

  이 성운은 절대 은하를 꿀꺽 삼킬 수 없다. 둘 사이에는 빛으로도 1억 년을 가야 하는 먼 공간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절대 잡아먹히지 않을 덩치의 은하는 멀리 있기 때문에 한 입 거리처럼 보인다.



  올해의 목표는 내 말대로라면 쉽다. 3월까지는 이걸 하고, 8월에는 저걸 하고 어쩌고 저쩌고. 근데 말이지, 사실 내 목표는 나의 능력에 비해 커다랗고, 저-기 멀리 떨어져 있다. 멀리 있어 작게 보이는 것을 난 한참 떨어진 이곳에서 잡아먹는 척하며 뽐내고 있다. 마치 거대한 은하를 잡아먹으려는 작은 성운처럼 말이다.

 뱉은 말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 사이의 먼 거리를 따라잡기 위해선 올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 내 몸집을 좀 키우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새로운 1년의 시작에 서니 12월이 멀어 보인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른다. 한 해의 끝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녀석을 만나지 않기 위해 오늘은 무엇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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