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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y 13. 2024

같은 하늘 아래 스타벅스

다른 하늘 아래 지구

 스타벅스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스타벅스가 뭔데 웃음이 나냐고?


 여기는 일본. 성인이 되고서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참이다. 부끄럽게도 그렇다. 가기 전부터 렌트니, 숙소니, 놀이동산이니 온갖 요란을 다 떨며 출발했던 여행은 감사히도 잘 따라와 주시는 어머니 덕분에 순항 중이다. 혹시 힘들고 음식도 안 맞는데, 어디서 자식들이랑 여행하러 와서 불평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서 꾹 참는 건 아닌지 앞으로도 잘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나름 어머니를 위해 일정을 뺀다고 뺐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두세 군데 관광지를 돌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좀 지치니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섰으면서 뭐가 그렇게 급했던지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커피 한 잔을 먹지 않은 게 생각났다. 왜 떠올리면 급격하게 더 당기는 거 있잖나. 한 번 커피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카페인이 절실해졌다.


 오늘의 마지막 관광 코스인 전통 시장을 둘러본 동생과 나는 얼른 근처의 카페를 찾아봤다. 멀지 않은 곳에 스타벅스와 일본 로컬 프랜차이즈가 나란히 있었다. 며칠 안 되는 짧은 여행에서 100번도 더 갔던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 순 없다. 난 쉬더라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로컬 프랜차이즈에서 쉬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스타벅스에 잠시 들렀다. 일본에서만 파는 한정판 스타벅스 머그잔은 못 참지.


 렇게 들어선 스타벅스는 소름 돋게도 '스타벅스 냄새'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인지 말해보라면 정확히 묘사수는 없지만. 그저 커피 냄새라고 하기엔 부족한 특유의 '스타벅스 냄새'.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인지하지도 못했던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동생을 바라봤고, 걔도 날 보며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스타벅스 냄새가 나!"


 웃음이 터졌다. 냄새 하나로 여행 피로가 다 풀린 느낌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신기하다며 실컷 킁킁댄 우리는 다시 일본 로컬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했다. 음 맡는 냄새가 나는 카페에서 한국보다 진하게 내려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자꾸 스타벅스에서 맞은 스타벅스 냄새가 떠오른다. 냄새를 맡고 어깨에 힘이 탁 풀리던 순간도 생각난다. 어떻게 낯선 곳에서 만난 익숙한 냄새 하나로 안심이 되는 건지. 한국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곳에 여행 왔으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와의 첫 해외여행을 별 탈 없이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나름 무거웠나 싶다.





 사실 나에겐 스타벅스를 찾지 않아도 위안받는 것이 있다. 이번 여행이 너무 정신없이 흘러가 그런 게 있다는 걸 떠올리지도 못했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밤하늘에 뜬 별다.


 해외여행뿐 아니라, 새로운 동네를 가더라도 밤이 되면 나는 하늘을 본다. 별자리를 찾고, 습관적으로 동서남북을 확인한다.


'이쪽이 북쪽이고, 여기가 동쪽이네. 그럼 슬슬 베가가 여기쯤 있어야 하는데…. 아, 찾았다!'


 얼마나 낯선 곳을 가든지 상관없다. 강원도 산골짜기든지, 북극을 가든지, 지중해 한가운데 떠 있든지 똑같다. 말레이시아에서 본 시리우스, 하와이에서 본 전갈자리, 리투아니아에서 본 큰곰자리. 모두 한국 밤하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 온 장소일지라도 익숙한 별자리를 찾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 집 옥상이나 저어기 리투아니아의 공원이나 모두 같은 하늘 아래인 것이다.


하와이에서 만난 전갈자리. 가운데 위쪽의 붉은 별 안타레스를 기준으로, 아래쪽으로 갈고리 모양의 전갈자리를 찾을 수 있다.


 아, 물론 이 방법은 아쉽게도 북반구에서만 통한다.


 모두 알다시피 지구는 동그랗다. 설마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어쨌든 둥근 지구는 열심히 자전하며 굴러가고 있다.

 자전축의 끝에 있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태양을 포함한 많은 별과 별자리들이 돌고 있다. 기특하게도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돌며 낮에는 밝은 태양을, 밤에는 아름다운 별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지구 반대편의 하늘이다.

 아무리 새벽 내내 하늘이 돌아가는 걸 지켜봐도 땅 아래에 있는 별자리는 볼 수가 없다. 북극성에서 90도. 거기서 내 위치만큼 조금 더 아래쪽의 하늘. 딱 거기까지다. 그보다 더 남쪽의 하늘은 땅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다면 남쪽으로 가야만 한다. 만약 한국의 밤하늘만 열심히 공부하고 여행을 떠났다면, 남쪽 나라에서 낭패를 볼 것이다.


북반구의 관측자는 분홍색과 초록색의 별은 볼 수 있어도, 지평선 아래의 노란색 별은 볼 수 없다.


 남반구는 북반구와 다른 별자리가 뜬다. 아는 별자리들은 땅 가까운 곳에서 아주 잠깐 떴다 이내 사라진다. 그 외에는 매일 보던 하늘과 다른 낯선 하다.

 처음 보는 반구 하늘 아래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는 밤하늘의 별 대신 또 다른 별, 스타벅스를 찾아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야겠다.


 그러다 남반구의 하늘에도 익숙해진다면 나는 지구 모든 방향의 하늘을 알게 되겠지. 그때는 어디를 가도 익숙한 별자리 아래다. 심지어 지구를 벗어나도 두렵지 않다. 달에서도, 화성에서도, 목성에서도, 천왕성에서도, 태양계 어디에서도 나는 별자리를 그릴 수 있다.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태양계는 아주 작기에 천왕성에 가는 것쯤으로는 쉽게 하늘을 바꿀 수 없다. 나로서는 다행인 셈이다.


일본 여행 중 만난 노을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냄새가 나는 스타벅스. 같은 행성이어도 다른 하늘이 뜨는 지구. 다른 행성이어도 같은 하늘이 뜨는 태양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으니,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게 보인다. 오늘은 숙소에 가서 바로 잠들지 않고 밤 산책을 나서야겠다. 동생에게 편의점이나 가자며 졸라야지.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는 하늘을 올려다볼 거다. 그러면 늘 보던 별자리를 찾을 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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