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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y 21. 2024

여행자를 위한 시계

표준시로 연결하는 세상

달 표준시.


며칠 전, 뉴스 헤드라인에서 난생처음 보는 단어를 찾았다.

 미국 정부가 NASA(미국 항공 우주국)에 2026년 말까지 달 표준시를 만들라 지시했단다. 쉽게 말해 달과 지구의 시간을 연결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폴로 미션 이후 약 60년 만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달에서 사용할 표준시까지 만든다니. 우주여행의 시대가 코앞에 온 게 실감이 난다.


맞아, 여행을 가려면 그곳의 시간을 알아야지.


 생각해 보면 인간들은 과거부터 여행을 위해 표준시를 만들어왔다. 작게는 옆집 친구와 만나는 일부터, 크게는 다른 행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일까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시가 필요하다. 장소와 장소를 잇는 기준이 되는 시계, 표준시를 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다.




 표준시가 없던 19세기 초, 우리는 도시마다 시계를 따로 만들었다. 태양이 가장 높을 때 정오가 되는 시계를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세워놓고, 이것을 기준으로 그 도시의 시간을 정했다. 서양은 시계탑을 세웠고, 동양은 해시계나 물시계를 두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 시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특정 시간에는 종을 쳐 주기도 했다. 그럼, 사람들은 그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시계탑을 가진 도시로 떠난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그 도시의 시계탑을 보고 회중시계를 조정한다. 근처 도시라면 정기 간행물을 보고 미리 시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으므로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여행 온 사람은 시계를 30분도 40분도 아닌, 애매한 37분 앞당긴다. 미국은 이런 중구난방 시간대를 무려 300개가 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기차 여행이 보다 활발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선로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여러 회사가 잘 나누어 써야 하는데, 서로 다른 시간을 사용하는 열차들이 뒤엉킨 것이다. 결국 1853년 뉴잉글랜드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출발한 기차 두 대가 계산에 실패하여 충돌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무려 14명이나 사망한다. 기준 시계가 없다는 건 단순히 계산하기 번거롭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300개가 넘는 시간대 사이에서 이런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여러 나라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표준시'를 만들었다. 시작은 열차 시간을 통일하는 것이었지만 점점 발전해 도시 사이의 시간을 연결해 주었고, 곧 국가 표준시로 발전했다. 수많은 도시가 가진 각각의 시간은 결국 국가 표준시를 기준으로 정리되며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역시 300개에서 단 4개로 표준시가 정리되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기차여행이 국가 표준시를 만들었듯이, 나라와 나라를 잇는 비행이 시작되면 기준이 될 세계 표준시가 필요하다. 해외 교류가 많아지는 20세기, 영국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의 태양시를 '협정 세계시'로 정하고 이는 세계 표준시가 되었다. 그 후 서로 간의 편의성을 위해 1시간 단위로 쪼개어 각 국가의 표준시를 맞췄다. 우리나라는 협정 세계시에서 9시간 더한 국가 표준시를 사용한다. 드디어 전 지구의 시계가 동기화된 것이다.




 기차, 비행기, 그다음은 뭘까.


지구와 달의 크기와 거리를 실제 비율로 표현했다. 출처 : NASA/JPL-Caltech


 우리는 로켓을 타고 우주에 간다. 지금은 비록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뿐이지만, 비행기가 그랬듯 얼마 안 가 대중적인 여행 방식이 될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달로 기계와 사람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2026년 9월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킬 계획이고, 우리나라 역시 다누리호를 보내는 등 달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달이 더 붐비기 전 한가한 지금이 달 표준시를 만들기 아주 적절한 시기다.

 19세기, 서로 다른 시계를 사용해서 안타깝게 충돌했던 두 열차를 잊지 말자. 지구와 달을 어떻게 하면 잘 연결할 수 있을까.



그냥 지구에서 쓰는 협정 세계시를 같이 쓰면 안 되나?

- 당장은 괜찮은 방법이다. 이미 그렇게 쓰고 있기도 하다.


 지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쌍둥이 시계탑 두 개를 만들자. 하나는 지구에, 하나는 달에 가져가는 거다. 그럼 지구에서 간단히 달의 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주는 요상한 곳이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두 시계는 다르게 흐른다.


 블랙홀 근처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블랙홀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면 지구에서는 일 년이 흘러버린다. 이건 비단 블랙홀만의 특징은 아니다. 모든 중력은 시간에 영향을 준다. 블랙홀은 중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질 뿐이다.

 달은 지구보다 작다. 작은 만큼 작은 중력을 가지고 있다. 무거운 블랙홀에 비해 빠르게 흐르는 가벼운 지구의 시간처럼, 무거운 지구에 비해 가벼운 달의 하루는 58.7 마이크로초씩 빠르게 흐른다.


 지구에 있는 쌍둥이 시계탑이 24시간 00분 00초가 흘렀을 때, 달에 있는 시계탑은 24시간 00분 0.0000587초가 흐른다. 하루하루 쌓인다면 언젠가 몇 초 정도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절대 별거다. 우리는 100년 전과 차원이 다른 정밀한 세계를 살고 있지 않은가! 달에서 있을 정교한 연구와 더 큰 우주선 착륙 등의 상황은 1초도 틀려선 안 된다. 0.1초 차이로도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렇다. 달에서 사용할 '달 표준시'를 만들어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구의 협정 세계시와 연결하는 것이다. 달과 지구에서 정교한 임무를 같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두 시계를 조화롭게 잘 맞춰 줘야 한다. 

 나란히 걸린 협정 세계시 시계와 달 표준시 시계는 미묘하게 다른 속도로 째깍거린다. 어쩌면 수십 개월에 1초씩 조정하는 윤초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4년에 한 번 하루를 추가하는 윤년이나, 몇 년에 한 번 한 달이 추가되는 윤달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는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NASA 케네디 우주 센터의 모습. 아르테미스 3 승무원들을 태운 오리온 우주선이 발사된다.



 지금 공항이나 기차역에는 세계 지도 위에 각국의 표준시를 알려주는 시계가 나란히 걸려있다. 스마트폰은 내장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사용해 내 위치를 알아낸 뒤 그에 맞는 시간대를 자동으로 알려준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친절하게도 대한민국 표준시를 같이 띄워주기도 한다.


 미래에는 로켓 발사 센터 대기실에 태양계 지도가 걸려있을 것이다. 각 행성에 달린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며 중력이 다른 행성에서의 시간을 표시한다.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GPS(Gravity Positioning System) 장치를 사용해 내가 있는 곳의 중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시간의 흐름을 판단하는 기계가 개발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성간 여행을 떠났을 때, 실시간으로 지구 표준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표준시를 만들고, 이런 상상을 하며 더 큰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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