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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n 10. 2024

예측불가. 봐야 안다!

양자 역학 part1

미우다 해변

 그즈음에 주변 사람들이 몇 번 대마도를 방문했었다. 뭐였더라? "가장 가까운 해외 여행지", "면세 쇼핑 당일치기", "저렴한 여행지" 등의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떠나고는 싶은데 형편은 넉넉지 않은 학생들의 눈에 대마도가 들어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었다. 장소가 곧 방문 이유가 되는 유명 여행지들과는 달리 떠나는 행위 자체가 이유였기 때문이다. 아는 거라곤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땅이라는 것뿐이었고,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뭔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마도로 여행을 가자는 말에 거기에 뭐가 있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난 "해외여행이잖아!"로 받아쳤다. 당시의 나에겐 말도 통하고 볼 것도 많은 제주도보다 여권이 필요한 낯선 언어의 별거 없는 곳이 더 매력적이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선박 티켓을 산 후에야 찾아본 대마도는 나름 괜찮아 보이는 여행지였다. 택시를 타고 한 시간가량 둘러보는 택시투어를 신청하면 편하게 해변이나 전망대 같은 관광지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한 선배는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쨍쨍한 푸른 하늘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멋진 하늘 아래서 산과 바다를 볼 생각에 되려 여행이 기대됐다.

 더군다나 우연하게도 우리가 방문하는 날 항구 근처에서 여름 축제가 열렸다. 작은 섬에서 열리는 축제라 크지는 않을 테니 구경이나 할까 하고 일정에 넣었다. 대충 완성한 여행 계획이지만 어디든 떠난다면 즐거울 것이다. 그럴 확률이 높다.

여름 축제

 맑고 푸른 하늘과 저 멀리 보이는 뭉게구름? 엄청나게 내리쬐는 직사광선과 주변 바다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끈적한 공기뿐이다. 푸른 자연의 관광지? 강원도가 더 좋다. 한국 전망대? 내가 거기서 왔는데 한국을 본다고 뭐가 신기할까. 너무 더웠고, 얼른 에어컨이 있는 택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연광 아래 사진은 정말 예뻤지만 찍을 기운 같은 건 없었다.

 분명 관광지를 걷고 있었음에도 사람은 한국인 세 명과 택시 기사님 뿐이었다. 필시 이런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는 정신 나간 사람은 우리 넷뿐인 게 틀림없다. 택시 투어를 마무리한 우리는 바로 카페 하나를 찾았고 체크인 시간이 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이 이럴 줄 몰랐다. 예측 대 실패다.


 숙소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며 생각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작은 섬의 축제는 과연 재미있을까? 사진으로 본 축제는 조금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걸 보러 또 땡볕에 택시를 타고 나서야 한다. 왜 대마도에 오자고 했을까. 그래도 우리는 일본어가 흘러나오는 티브이 소리를 들으며 땀에 전 화장을 고쳤다. 그래, 가기로 했었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야지.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하루가 너무 길었다. 


 낮 동안은 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건지. 축제 현장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생각보다 큰 무대에서는 지역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 앞에 대충 깔린 파란 방수포 위로 사람들이 앉아 공연을 즐겼다. 모두 즐거워 보였다. 덩달아 나도 미간에 힘이 풀렸다.

 늘어선 부스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일본식 빙수를 하나 산 우리는 방수포 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빙수는 정말 맛이 없었지만 아까보다 카메라를 켜는 횟수가 늘었다. 렌즈를 향해 연신 브이를 그리고 있으니 해가 지는 하늘 위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이 섬, 보기보다 돈이 많나 봐! 작은 축제에 맞지 않게 엄청난 규모의 폭죽이 터졌다. 귀가 먹먹하고 세상이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분명 먼바다에서 발사하는 것일 텐데 어째서 내 머리 위에서 빛을 내고 있을까.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계획보다 한참을 더 놀고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낮에 했던 투어 사진은 몇 장 없었다. 저녁 즈음 축제에 가면서부터 사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똘망이고 흥분으로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재밌었다. 내가 작은 섬 대마도의 여름 축제에 마음을 빼앗길 줄 누가 알았을까.






 1801년 물리학자 '토머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은 파동이냐, 입자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온다. 구슬과 같은 입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키면 모양 그대로 반대편 벽에 두 줄의 흔적을 남기고, 물결과 같은 파동은 서로 간섭하며 여러 줄의 무늬를 남기게 된다.

 물리학자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저머는 이중 슬릿에 전자를 통과시켰다. 전자는 입자이기 때문에 실험 결과는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슬릿을 통과한 전자는 파동처럼 간섭무늬를 그렸다. 전자를 하나씩 하나씩 통과시켜 봤지만, 같은 현상이 나왔다. 하나의 전자가 어떻게 파동처럼 스스로 간섭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까.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 것이다. 하나의 전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존재할 확률이 있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설정한 후, 전자가 어느 슬릿으로 들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나씩 확인하니 결과가 이상하게 나왔다. 언제 파동인 것처럼 행동했냐는 듯 입자로서 행동했다. 간섭무늬가 사라지고 입자라는 걸 증명하듯 선명한 두 줄의 결과가 남았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다. 전자가 어디로 가는지 보았을 뿐이다. 위치를 정확히 보는 것으로 결과가 바뀌어 버렸다.

 마치 복권을 긁기 전에는 당첨이 될지, 낙첨이 될지 확률로서만 존재하다가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둘 중 한 가지의 상태로 고정되는 것과 같다. 본다는 그 행위만으로 정해져 버렸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신이 뭘 하든 신경 쓰지 마라."
- 닐스 보어


좌) 닐스 보어, 우) 아인슈타인


 우리는 아름다운 천체들이 가득한 우주에 살고 있다. 빛나는 별과, 행성들을 눈에 담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이 멋진 우주를 이루고 있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양자"들이다. 전자, 양성자, 광자와 같은 양자는 분명 그곳에 있지만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확률적'인 양자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관측 하는 순간 입자로서 행동하는 양자들. 작은 양자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이루고 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경험하지 않은 일이 와닿지 않는 건, 어릴 땐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우주의 섭리일지도 모르겠다. 보기 전까지, 겪기 전까지 그저 확률로서만 존재하던 것들이 이 세상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여행은 재밌을 거란 마음을 가지고 떠난 여행에서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실망하고, 촌스러울 거로 생각했던 축제에서 예쁜 불꽃놀이를 봤다.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떠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다. 사진으로 보고, 전해 듣고, 머리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예측 불가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다. 우주를 이루는 양자들부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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