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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탈곰 Dec 23. 2022

엄마도 이 노래 알아?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6학년 딸아이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가 반가워 흥얼흥얼 따라 불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도 이 노래 알아?”

한다. 




어떻게 이 노래를 모를 수 있겠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전래놀이가 되어버렸지만 우리 세대 여자아이들의 최애 놀이였던 고무줄놀이. 우리는 해맑은 표정으로 전우의 시체도 가뿐히 넘고, 장난감 기차 화물칸에 과자와 사탕도 수없이 나르곤 했다. 금강산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일만 이천 번 이상 불렀을 법한 노래가 아니던가. 처음엔 고무줄을 발목에 감고 시작해서 무릎과 엉덩이, 허리를 거쳐 겨드랑이, 귀, 머리를 지나 마침내 손을 뻗어 만세에서 끝나던 놀이, 한번 시작하면 마지막을 기약할 수 없었던 그 고무줄놀이의 대표 노래가 금강산이었지. 


그 시절 고무줄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치꼭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정말 잘하는 친구나 반대로 못하는 친구는 깍두기로 뽑아 이편저편 양쪽에 참여할 수 있게 해 게임에 공정성을 부여한 것이다. 물론 나는 못해서 늘 깍두기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놀리거나 얕잡아보는 기색은 없었다. 말 그대로 못해서 누리는 특권이었던 셈이다. 왕따 따위 걱정 없이 모두가 한데 어울려 놀던 그리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근데 너 ‘철 따라 고운 옷~’ 할 때 ‘철’이 무슨 뜻인 줄 알아?”

“응 엄마. 당근 알지. 그것도 모르고 부를까 봐? 철이잖아. 레일, 레일로드, 철도. 엄마 우리도 기차 타고 금강산 여행 가면 좋겠다.”

헉. 이럴 수가. 설마 모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확인 차원에서 물어본 거였는데. 이래 봬도 책 육아 십여 년에 엄마표 영어 8년 차다. 오늘도 이렇게 현타를 맞는다. 내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은 문해력이 낮은 아이라고 말이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를 붙들어 앉혀놓고 조근조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철이란 말이지. 계절이나 때를 나타내는 말로 사시사철, 제철음식 등에 쓰이기도 하고 어쩌고 저쩌고.

“아, 그래? 철이 그 철이 아니란 말이지.” 

잠시 멋쩍어하던 아이는 본연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가 더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철 따라~ 고운 옷 갈아 입~는 산”




그래, 어차피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어. 육아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길게 보자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포기하지 않는 엄마와 지치지 않는 아이의 하루하루가 쌓이면 결국엔 내가 상상한 미래가 오리라고 믿는다.     


“그 부분은 음이 그게 아니잖아. 자 따라 해 봐. 철 따라 고운 옷.”

“엄마가 부르는 게 더 이상해. 정말 이 노래 아는 거 맞아?”

티격태격하며 소리 높여 함께 불렀다. 각자의 금강산을 생각하면서.

“철 따라~ 고운 옷 갈아 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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