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돈, 그리고 지금의 한 걸음

증명에서 표현으로

by 하우주

지난 글에서 나는 관계가 ‘나를 만나는 곳’이라고 썼다. 관계 속에서 내가 건네는 에너지의 결을 마주하고, 때론 트리거를 마주하면서 나를 깨우기도 한다. 나의 최선이 언제나 상대의 최선이 아님을 깨닫고, 그 모든 과정이 나를 깨우는 수련이었다고,

그런데 관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더 깊이 나를 흔들었던 주제가 있다. 바로 일과 돈이다.


돈은 감정의 확대경이다

우리는 우리와 돈의 관계, 돈이 삶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돈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머니 게임의 인질로 우리 자신을 맡기고 돈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두었다.
- 데보라 프라이스 『머니 테라피』 P33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막연하게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돈’에 대해 무지한 채로 40년을 넘게 살아왔다.

어릴 때 시골 학교에서 우유 급식을 맘 편히 해 주시지 못할 정도로 우리 집의 형편은 좋진 않았고, 부모님은 늘 못 해 준 것이 많다고 미안해하시지만, 정작 나는 가난한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한 친구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냥 그 정도로 살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가난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에서 평범히 자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는 것’, ‘빚만 없으면 된다’, ‘부족하면 좀 불편한 것’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은 월급으로 소비하고, 저축하고, 또 저축한 돈으로 배낭여행도 다녀왔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적은 연봉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부족하지 않은 월급이라 생각했고 어느 때에는 좋은 조건으로 기존의 1.5배가 넘는 연봉을 제안받아 이직을 하기도 했으며 명절마다 넉넉히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모은 돈으로 덜컥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손해를 보고 정리하기도 했고, 또다시 운 좋게 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받고 적당히 쓰고, 모으고, 평범하게 살았다.


‘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 건, 예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전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였다.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돈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이 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돈을 알고, 배우고, 어떤 태도로 돈을 대해야 하는지 나만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돈’에 큰 의미를 부여하자, 돈이라는 존재 또한 내가 준 것과 같은 크기의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하면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불안, 조급함, 비교, 열등감… 대부분 받은 월급으로 한 달 살이를 이어 나가다가 갑작스러운 지출에 당황하고, 카드값을 걱정하다가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잘 살지?", “난 언제 돈 모아서 노후 준비를 하지?” 등등의 생각들과 불편한 감정들이 이어진다.

월급의 일부를 모아 투자한 주식을 보며, 빨간색을 보면 기뻤다가 파란색을 보며 좌절하기도 하고, 뜻밖의 수익에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가 월급일을 기준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카드값과 각종 공과금, 보험료 등을 보면 속이 휑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상한 건, 언제부턴가 여유 돈이 조금 생겨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부족함의 감정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에서 오고 있었다. 불안으로 번 돈은 불안 속에서 쓰게 되었고, 불안으로 얻은 성취는 불안으로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물론 불안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안은 움직이게 하고, 생존하게 하고 때로는 성취하게 한다. 그런데 불안을 연료로 쓰면, 멈출 수가 없다. 목표를 이루어도 다음 불안이 기다리고 있다. "이만큼 벌었으니 됐다"가 아니라, "이것도 부족하면 어쩌지"가 된다.

돈이 문제라기보다, 돈이 나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은 나를 증명하는 곳이었다.

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20년 가까이 회사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목표한 일이 있어 준비를 하다가 뜻밖에 기회가 생겨 회사 인턴쉽을 한 게 시작이었다. 조직 생활이 잘 맞는 것 같았고 일이 하나씩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나는, 진심으로, 회사 생활이 너무 재밌었고 회사가 좋았다. 인턴이 아니라 정직원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입사하게 된 회사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좋은 분들과 좋은 곳에서 재미있게 열심히 일했다. 좋은 성과도 냈고, 인정도 받았다.


일하는 것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나는 성취에 대한 욕구와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었다. 내 일을 해 내고 인정받고 싶었고 결과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이 정도는 하는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업무가 많고 바쁜 게 자랑이었고, 야근을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워커홀릭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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