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空)으로

나는 원래부터 온전했다

by 하우주

"공(空)한 마음은 '아는 것'이 없었다. 모른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비워진 눈으로 바라보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옳고 그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름' 속에서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지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 며칠 뒤, 모닝 페이지를 적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모른다'는 것이 왜 편안했는지를.


모른다는 것

우리는 '안다'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안심한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저건 저런 일이고, 이 상황은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정리하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걸 알아’라고 규정하고 세상을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나와 세상을 알게 된 것 같고,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잠시 편안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불안해진다. 사람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고, 상황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더 정확히 알고 싶어 한다. 더 확실하게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삶은 더 단단해져서 유연함을 잃고, 마음은 점점 더 크고 높고 두꺼운 벽을 쌓아가며 닫혀간다.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다. '안다'는 순간 마음은 닫힌다. 이미 답을 정해놓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반면 '모른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열린다.


이전에 ‘삶이 나보다 더 잘 안다’는 감각을 경험하고도 막연함이 남아 있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진짜 자신감은 ‘내가 다 안다’는 에고의 확신이 아니라, ‘몰라도 괜찮다, 삶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라는 거대한 신뢰에서 온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다.


공(空)과 영점장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空)이라 부른다.

공(空)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다.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상태다. 꽉 찬 컵에는 아무것도 부을 수 없다. 비어있어야 담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 물리학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물리학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라 믿었던 곳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발견하고 이를 '영점장(Zero Point Field)'이라 불렀다.
- 린 맥타가트 『필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 모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진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한 에너지가 있는 장(場). 관측되기 전의 상태. 아직 어떤 형태로도 고정되지 않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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