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
감사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사랑의 마음을 가져라.
많은 종교에서 또는 자기 계발 서적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감사를 만들려고 한다. 감사 일기를 쓰고, 좋은 일을 찾고,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한다. 원수조차 사랑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해 보려 무진 애를 쓴다.
평생을 무교로 살다가 서른 중반, 말 그대로 ‘사랑하는’ 친구와 자영업을 시작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영업자의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와 사이도 멀어지고 혼자 운영하다가 몸과 마음이 고되어져, 외롭고 힘들고 막막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깨달았다. 기댈 곳이 ‘신’밖에 없었다.
그저 내맡기고 바라면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설교의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이유도 모르게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었는데, 문득 자신이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떠올라 그 사람에게 가 무릎을 꿇고 미워하는 마음을 사죄했더니 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좋지 않게 멀어진 동업자 친구가 생각났다. 이 모든 어려움이 그 탓인 것만 같아 친구에게 연락해 만났지만 친구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좋은 크리스천’은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로도 몇 년 간 교회 근처를 맴돌고 한동안 열심히 다니긴 했지만, 결국 나는 크리스천이길 포기했다.
물론 감사하는 마음을 알기 위해 감사한 일을 생각해 보고, 감사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생각으로만 감사함을 찾으려 할 때, 그렇지 못한 마음은 언제건 파도가 모래 위에 적은 글자를 쓸어 버리듯 쉽게 감사함을 지워 버렸다.
매사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감사할 일만 감사하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고 싶었다. 힘들기만 한 현실에 무작정 모든 걸 감사할 수 없었고, 상처 입은 마음에는 사랑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감사와 사랑으로 살지 못하는, 혹 머리로는 가능하겠으나 마음으로는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타박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하면서 조금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사와 사랑은 만들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정이라는 것을.
놓으면 드러난다
지난 글에서 나는 놓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붙잡고 있던 생각, 통제하려는 마음, 외부의 기준. 그것들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을 때, 빈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마음을 열었을 때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삶이 조금 느슨해졌다. 꽉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힘을 빼는 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놓으면 무너질 것 같았는데, 막상 놓아보니 무너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놓았을 때 비워졌고, 비워지니 마음이 열렸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공(空) 그 자체였다. 공(空)한 마음은 ‘아는 것’이 없었다. 모른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비워진 눈으로 바라보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옮고 그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름’ 속에서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무언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되었고,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이 있었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이 새로웠고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온 세상이 감사했고, 사랑스러웠다.
감사는 밖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거기 있었지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붙잡고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선물한, ‘덕분에’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하나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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