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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Mar 13. 2024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퇴근길,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이제 퇴근해~ 오늘 뭐 했어?"

"오늘~ 날이 좀 풀렸잖아. 날이 좀 따시길래 아빠랑 낮에 저~기~ OO골까지 걸어갔다 왔어. 한두 시간 걸었는데 가는 길에 길이 험하니 아빠가 손도 잡아주고~ 하하하하하~ 엄마가 요새 행복하네~~"

"오~ 좋으셨겠네 ㅎㅎㅎㅎㅎ"

치매 예방에 걷는 게 좋다고, 날이 좀 풀리면 따뜻하게 입고 아빠와 나가서 걷다 오라고 잔소리하길 며칠, 드디어 엄마 아빠가 같이 걷고 오셨다고 했다.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매일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신 후로 아침 출근시간, 점심 먹은 후, 저녁 퇴근하면서 전화를 드렸다가 요즘은 내가 점심을 먹고 난 후 엄마에게 전화하는 시간이 엄마가 노인회관에서 요가를 하시는 시간이라 아침, 저녁 두 번만 전화를 한다.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엄마가 경도인지장애를 받으신 이후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가족의 누군가가 아프다는 건, 혹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연스럽게 생활이 변하게 됨을 체험하는 중이다.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온 가족에게 알렸다. 누구보다 먼저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아웅다웅, 티격태격, 때론 서로 아껴주시는 듯하다가도 어떨 때 보면 '저러고 어찌 평생을 같이 사셨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못마땅해하실 때도 많지만 결국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빠이기에 아빠가 가장 열심히 협조를 해 주셔야 했다. 엄마의 상태를 설명드리고, 같이 걷기 운동을 하시라는 잔소리와 엄마가 금방 금방 잊고 또 물어봐도 언제나 친절히 대답해 주라고, 무엇보다 엄마의 기분을 좋게 유지할 수 있도록 싸. 우. 시. 지. 마. 시. 라! 고 신신 당부했다.


형제들과 성인이 된 조카들에게도 알렸다. 다들 각자의 삶들로 바쁠 터이니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었다. 안부 전화나 자주 드리라 부탁했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당신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건 사실 별로 없었다.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밥 한 끼 또 같이 먹으며 잠시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 무엇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선은 지켜줘야 서로가 편했다. 그 이상의 무엇은 각자가 알아서 할 몫이었다.


지난 설 명절, 설날 아침에야 부모님 댁으로 출발한 나에게 카톡 전화가 왔다. 미국에 사는 조카였다.

"고모! 아직 시골 아니에요? 할머니랑 같이 계실 줄 알고 전화했는데!"

저녁을 먹고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있을 줄 알고 전화를 했다는 예쁜 조카 녀석. 조카에게도 엄마의 상태를 알려줬다.

"OO아~ 할머니가 얼마 전에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셨어~"

"..? 그게 뭐예요?"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 생각하면 돼"

단어가 생소했는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알츠하이머라고 하니 알아들었다.

"그래서 OO아, 이따가 도착해서 고모가 다시 너한테 전화할게. 그런데 할머니가 너 언제 한국 나오냐고 백번 물어보실 수도 있어~ 엄청 기다리시거든~"

그리고 이어진 조카의 대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백 번 물어보시면 백 번 대답하면 되죠~ 헤헤헤헤"

마음이 예쁜 아이들.. 이런 손주들을 둔 우리 엄마아빠는 참 복 받으신 분들이다.



명절을 보내고, 엄마랑 둘이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불쑥 이야기하셨다.

"이제 좀 살만하니.. 이제야 형편도 좀 피고 살만 하다 싶으니 정신이 왔다 갔다.. 그게 억울해.."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마지막 말에 울음이 묻어 있다. 묻어 나오는 울음에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코끝이 아려왔다.

"엄마! 아니야~"

심호흡을 한번 하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누르고 다시 한 번 엄마한테 이야기한다. 지금 엄마의 해마의 수축 상태는 일반 노화로 봐도 좋을 정도로 가벼운 상태라고, 치매라는 것이 약 먹고 관리만 잘하면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속도가 1-2년이 아니고 10년까지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관리 잘하면 87살에 치매가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쯤은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구구절절 다시 이야기하고 엄마를 안심시키고 관리 잘하시라, 나랑 더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그렇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알았어..."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울음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나를 보며 대답한다. 아이 같은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엄마는 요즘 바쁘게 하루를 보내신다. 오전에 늘 해오시던 집안일을 끝내면 노인회관에서 매일 하는 요가도 거의 매일 가시고, 잔뜩 가져다 드린 숙제를 하시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신다고 고백하신다. 공부하기 싫은 건 모두가 비슷한 건가 ㅎㅎ 허리가 아프시다고도 하시고, 자꾸 잠이 온다고도 하시고, 하다 보니 자꾸 딴짓을 하게 된다고도 하셨다 ㅎㅎ 중간중간 동네 마실도 가셔야 하고 명절 전 후로는 품앗이도 가시고 요가를 하고 오셔서는 근육통에 쉬시는 날들도 있다. 날이 풀리니 아빠랑 걷기 운동도 하셔야 하고, 봄이 오니 집 주변 크지 않은 텃밭을 살뜰히 살피시느라 또 꽤나 바쁘실 예정이다.

진단을 받아 드시던 치매약 아리셉트는 5mg 짜리도 부작용이 없으셨고, 그래서 임상 결과 가장 효과가 좋다는  10mg으로 처방받아 매일 저녁 드시고 계신다. 치매약 먹는 걸 까먹을까 봐 두 배, 세 배로 신경 쓰신다는 엄마에게 잘하고 계신다 무한 칭찬을 해 드렸다. 전보다 더 자주 통화를 하는데 전보다 할 이야기는 점점 더 많아진다. 크게 새로울 것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들인데 엄마와 나는 통화하면서 전보다 더 많이 재잘거리고 더 많이 웃는다.




옛날 분들은 동네 가까운 데에 묘지가 있고, 누군가 죽으면 동네 살던 집에서 초상을 치르고 동네를 가로지르며 상여를 운반했으니 '죽음'을 늘 인지하며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인지하고 산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안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지 않았을까. 어쩌면 죽음을 인지하고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지금 우리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더 밀도 있게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고 매일, 매분, 매 순간 늙어가고 있으니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는 말이 타당해 보인다. 어쩌면, 나는, 내 눈앞에 닥친 일들로만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나에게 엄마의 경도인지장애 진단은 삶의 시간의 흐름 중에 PAUSE를 누르게 했다. 멈춰 서서, '이 일을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이 일이 나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뵈러 가지 못했었다. 나의 나이 듦을 알아차리면서도 부모님의 나이 듦을 못 본 척했었다. 언제나 항상 영원히 지금 그 모습으로 내 옆에 계셔 주실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다. 웨인 다이어의 책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제목처럼, 내가 명확히 기억하고 인지해야 할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SPACE를 누른다. 나의 삶은 다시 재생되지만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엄마는 우리를 떠나시는 날까지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시다, 맑은 정신으로  우리를 기억하시며 하늘나라로 가셨다'라고 나는 미리 챕터의 마지막을 써 둔다. 나의 엄마의 이야기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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