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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Feb 07. 2024

검사를 받기까지 II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검사 전날 엄마는 갑자기 MRI 검사가 무섭다고 했다.

"엄만 뭐가 무서워 ㅎㅎ 11월에도 30분 동안 MRI 검사받아놓고는"

"언제 MRI 검사를 받아?"

"엄마, 허리 때문에 MRI 검사받았잖아, 지난달에 받았잖아. 30분 동안 손가락도 안 움직였다고 나한테 자랑했잖아"

"몰라... 기억이 안 나는데.. "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11월에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 예약을 했고 거의 7년 만의 재진료라 검사들을 다시 해야 했다. 그리고 MRI 검사를 하러 들어가며, 엄마는 검사 전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을 잘도 하셨다.

"나는 병원 오면 시키는 대로 해, 무서운 것도 없어. 병 고쳐줄 건데 왜 무서워? 이렇게 하라면 예~ 저렇게 하라면 예~ 하고 따라가면 돼"

병원에 가서 검사 한 번 할 때마다 당신은 건강한데 쓸데없이 이런 검사를 하라고 한다며 종종 화를 내시는 아빠를 저격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로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참 잘 따랐다. 그래서 예전 세 번의 수술에도 늘 경과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척추 MRI를 찍고 나온 엄마는 이번에도 검사 잘 받았다며 자랑을 하셨었다.

"MRI 검사 한참 했지?"

"응, 30분 정도 한 거 같아"

"오래 했네. 엄마는 손가락도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었어. 엄만 이런 검사는 다 잘 받아"

"맞아, 우리 엄만 검사 참 잘 받으셔"

그렇게 검사를 잘 받았다고 자랑해 놓고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겨우 한 달 전 일인데.. 그 기억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해가 바뀌고 첫 금요일 오전 11시, MRI 검사를 받으러 갔다. 진료를 받은 신경과와 연계된 규모가 큰 병원이었다. 1층은 북적였지만 검사를 하는 층은 비교적 한산하고 깔끔했다. 왠지 마음이 놓였다. 예약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는데 다른 검사자가 없었는지 엄마는 바로 검사를 받으실 수 있었다. 안내해 준 대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자꾸만 내려앉는 척추 때문에 엄마는 점점 더 키가 작아지고 있지만, 씩씩하게 총총총 걸어 엄마는 검사실로 들어가셨다. 엄마가 검사를 받으시는 동안 읽으려고 책을 가져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땐 유튜브 쇼츠나 봐야 한다. 시간이 후딱 간다. 엄마는 10분도 채 안 되어 검사를 끝내고 나오셨다. 여전히 씩씩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검사 전 날엔 무섭다더니 ㅎㅎ

"엄마 검사 무서웠어?"

나의 물음에 엄마는 또다시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니~ 금방 끝났잖아"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30분을 넘게 기다렸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앞으로 중년이 된 딸, 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모님을 부축해 검사실로 모셔가는 광경이 이어졌다. 대부분 자식으로 보이는 분들이 부모님의 한쪽 팔을 잡고 천천히 부모님의 속도에 맞추어 한 발씩 내딛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은 도대체 무슨 인연일까...'

애처롭기도, 아름답기도 한 모습들이었다. 병원의 풍경들은, 쉽게 지나치던 광경에도 눈길을 머무르게 했다. 때론 눈길을 황급히 거두다가도 뒤돌아 생각해 보면 생과 사가 멀지 않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생각들로 복잡해지려 할 때쯤 엄마의 이름이 불려졌다. CD와 진단서가 담긴 봉투를 들고 병원을 나와 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꽤나 유명한 맛집인지, 12시도 안 된 시간인데 이미 대기 손님들이 있었다. 이름을 적어놓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 또 기다렸다. 한 십 분을 기다리니 이른 점심을 드신 손님들이 가고 자리가 났다. 오후에 엄마는 SNSB 검사를 하셔야 했다. 검사가 2시간에서 2시간 반 가까이 걸릴 것이니 든든히 드시라고 했다. 엄마와 같이 밥을 먹을 때면 항상 서로서로 음식들을 주느라, 혹은 반찬의 위치를 바꾸느라 분주했다. 엄마는 조그만 반상을 놓고도 두 번, 세 번 젓가락이 가면 그 반찬을 자식들 앞으로 옮겼다. 여전히 엄마와 실랑이를 하며 엄마와 나는 든든히 야무지게 점심을 먹고 2시로 예약된 검사를 받으러 갔다.


SNSB 검사는 진료받은 신경과에서 받았다. 언제나 친절한 간호사님은 엄마에게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안내했고 검사할 것이 많다며 피를 꽤 많이 뽑아야 한다고도 알려주었다. 피를 뽑고 나오셔서 지혈이 끝나자 간호사님은 SNSB검사를 위해 엄마를 모시고 갔다. 덩그러니 병원 대기 의자에 앉아 다시 책을 꺼냈다. 등받이가 없어 불편했다. 심란한 마음은 책을 읽도록 두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백번 천 번을 머리로 생각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핑계 삼아 에어팟을 귀에 꽂고 유튜브로 최강야구를 보고 있던 중에 의사 선생님이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보호자분께 어머님 뇌 MRI 검사 결과 보여드리려고요. 어머님이랑 같이 보여드릴까요?"

"아니에요, 보여 주세요"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신 엄마의 뇌 MRI 결과에서 특이한 사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세혈관이 몇 개가 막힌 것이 보이는데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증상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해마였다. 정상인의 해마와 비교해 보았을 때 엄마의 해마는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뇌의 핵심 기억 중추인 해마가 위축되는 건, 알츠하이머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다행인 건, 엄마 나이의 연령대 75세 이상의 연세에서 보일 수 있는 뇌혈관 질환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자세한 건 인지기능 검사까지 해 봐야 알겠지만, 뇌 사진만 보면 기억력 감퇴로 어려움이 있으실 거예요. 설명을 드렸었지만 SNSB 검사는 어머님과 비슷한 성별, 연령, 학력 수준으로 검사 평가를 할 거예요."

엄마의 뇌 사진을 본 후, SNSB 검사 결과는 채점과 평가를 위해 끝나고 다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다음 주에 방문해 피검사 결과까지 함께 듣겠다고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진료실을 나와 핸드폰을 보니 검사하느라 고생하신 엄마에게 저녁을 사 드리러 오겠다는 친구의 카톡이 와 있었다. 엄마가 많이 반가워하실 듯하여 그러자고 하고 주변에 갈 만한 저녁식사 장소를 찾아 정했다.

2시간 40분이 지나 엄마는 검사방에서 나왔다.

"아이고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어머님이 검사받으시느라 고생하셨죠"

검사하신 분께 연신 고생하셨다고 이야기하며, 정작 본인이 힘드신 건 생각 않고 검사하신 선생님에게 힘들어서 어쩌냐고 안쓰러워하셨다. 서로 고생하셨다는 이야기가 서너 번을 더 오가고 나서야 나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엄마 힘들었지? 두 시간 반 넘게 검사했어"

"계속 앉아 있으려니 좀 힘들긴 하던데 괜찮았어. 근데 좀 춥더라. 검사하는 선생님이 차분히 잘하더라, 선생님도 힘들겠어"

엄마의 시선은 늘 본인이 아닌 상대방이거나 타인이었다. 내가 힘든 것보다 상대방이 힘든 걸 늘 안쓰러워하셨다. 상대방이 젊을수록, 어릴수록 더했다. 그날 친구가 대접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엄마는 조카와 닮은 식당 알바생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조카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밥을 다 먹고 친구와 함께 카운터에 가 계산을 하고 주차 등록을 하고 돌아보니 엄마는 그새 테이블을 치우러 온 그 알바생에게 '너무 맛있었다, 고맙다, 고생한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만 확실히 E인가 봐, 나랑 달라"

친구와 큭큭거리며 문 쪽으로 향하며 엄마를 부르자 엄마는 그제야 알바생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우리 쪽으로 왔다.


친구와 후식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고단하신지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 냥이는 침대로 올라가 슬그머니 엄마의 다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밤 냥이는 엄마에게 꾹꾹이를 해 줬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신 엄마는 여전히 엄마 다리 주변에 자리 잡고 누워 있는 냥이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할머니 어제 피곤하다고 마사지해 줬어? 할머니 다리를 요 요 콩알만 한 발바닥으로 꼬옥~ 꼬옥~ 눌러서 마사지를 해 줬어?"

엄마는 기특하고 대견하다며 냥이를 보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언제나 병원 진료를 잘 받으시는 엄마였지만 힘들고 피곤하고, 그래서 조금 다운되지 않으실까 내심 신경이 쓰였었는데, 일부러 찾아와 준 친구 덕에, 의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꾹꾹이를 해 준 냥이 덕에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신께 매달리는 순간이 있다. 간절하고 절실해져서 그리하여 바닥까지 겸손해져서, 저는 저의 최선을 다할 테니, 저의 힘이 닿지 않는 부분은 신께서 도와주시기를 그렇게 부탁하고 염원하는 순간이 일생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찾아온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랑이 많다 못해 늘 넘쳐 자식들에게 "지나치다, 과잉보호다"라고 때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끝내 여전히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 넘치는 77세의 엄마를 바라본다. 앞으로 남은 엄마의 삶이 모든 순간순간이 좋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속상함, 슬픔, 걱정, 우울함 따위의 안 좋은 감정보다는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이 더 더 많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남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신께 도움을 구했다. 엄마가 9살이던 해 돌아가신 외할머니께도 기도했다. 외할머니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평생 고생 많이 하셨으니, 남은 시간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외할머니를 원망하겠노라고 협박도 했다. 나의 기도가, 나의 염원이 잘 닿을 수 있기를 또다시 기도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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