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유리멘탈들에게
정신의학과를 다녀오고, 약을 먹었다고 하여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전 날과 다른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가기 위해 아침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켰고 준비를 하고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하고 회사에 도착했다. 대표는 전 날에 이어 또 다른 부서와 아침 회의를 했고 여지없이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막말과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동물원이었어요."
오전 회의가 끝나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난 것 같다는 해당 부서 팀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날과 동일하게 업무를 했다. 바뀔 것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모두들, 또 대표의 변덕이 시작되었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회사에 잠시라도 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대한 늦게 출근 카드를 찍고 점심시간에 후다닥 나가 밖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을 꽉 채워 점심시간을 보내고 누구보다 빠르게 시간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나와 집으로 가는데, 집 도착 20여 분을 남기고 명치 아래 뱃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었나..'
메슥거리는 속 때문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언제나 막히는 구간에 들어서자 속은 더 안 좋아졌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웅크려 누웠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참을 끙끙거리다 어느샌가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한 시간 정도 지나 있었고 메슥거림은 사라졌다. 주섬거리고 일어나 집에 있는 음식들을 대충 챙겨 먹고 약을 먹었다. 메슥거림이 공황증상의 하나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가 지나가고 또 하루가 시작되고 여지없이 나는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해 약을 먹고 나니 몽롱하고 졸리기도 했고 하루종일 힘이 없었다. 결국 점심시간엔 회사 식당에서 대충 먹고 차에 가 쉬었다. 주말까지도 똑같았다. 이틀 내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만큼 기운이 없었고, 어디가 아프다 딱히 말할 수 없지만 앉아 있을 수도, 서서 무언가를 하기도 힘들었다. 운동도 중단해야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다음 주, 대표의 보고 시간. 여지없이 나는 막말을 들었다. 팀장과 함께 변덕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계속해 온 업무를 보고하자 자신의 지시를 듣지 않았다며 '지시를 듣지 않는 직원은 해고'라며 한참을 화를 냈다. 보고가 끝나고 난 후 팀장님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보고하는 용어와 방식을 바꿔보자고 했다. 나만 힘들겠는가..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일을 하고, 아름답게 정년퇴직을 하고 이곳으로 온, 나이 지긋하신 팀장님도 욕을 먹었긴 마찬가지였다.
그날 퇴근을 하고 나는 다시 병원에 갔고 약을 타 오고 집에 가서는 쓰러져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 할 일을 하고 그 주 주말 역시 이틀 내내 잠을 자며 쉬었다.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왔다. 친구들 표현을 빌리지만 '신생아 모드'로, 체력 부족으로 종이인형처럼 너풀대며 기운 없이 다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우울증이 같이 오는 이유를 알 듯했다. 그래서 더 힘들어지고 또 우울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버린 '공황장애'라는 질환에 대한 나의 예전 생각은,
'스트레스 관리만 좀 잘하면 나아지는 거 아냐?, 초기 증상이 숨 쉬는 게 조금 어려운 정도였으니 약 며칠 먹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정도였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황 장애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초기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 증상이 심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왔다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기력 없는 몸처럼 머릿속도 마치 뿌옇게 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까마득하여 선명하게 생각을 하거나 판단을 할 수도 없었다. 집중을 할 수도 없었다. 눈에 초점이 없이 흐릿했다. 겨우 숨만 쉬며, 꼭 해야 할 일만을 억지로 가까스로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속도는 느려졌고, 집은 그야말로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게으른 사람은 없다. 우울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청소를 좀 해야 하는데...'
일요일 밤 여전히 침대에 누워 지저분한 집을 보며 생각하다가,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혼잣말을 하다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두통이 오는 듯했지만 이내 또 스르르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전 아지와 산책을 하며 나는 또 아지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가 너무 힘이 없어, 조금만 하고 들어가자"
언제나 그렇듯 그저 말없이 녀석은 나를 따라 주었다. 아침 이른 시간과 밤에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어 산책하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녀석은 골골거리는 집사 때문에 맘껏 산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지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아주 빨리 알아차렸다. 아지는 골목을 돌아가고 싶던 길로 가려다 멈칫, 멈춰 서서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마냥 해맑기보다는 눈치를 더 많이 보는 아이, 식탁에 간식을 둬도 덤벼들어 먹거나 나에게 와서 조르는 일 없이 식탁 앞에 앉아 한참씩을 기다리는 아이였다. 하루에 겨우 두 번, 아지와의 그 잠시의 산책조차 힘겨워하는 나를 배려해 주고 눈치를 보는 녀석을 보니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힘을 내야겠구나.. 이래서 부모님들이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하시는 거구나'
아지가 가고 싶어 하는 골목으로 발길을 옮기며, 어떤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어쩌면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상했다. 받아들이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후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10분 정도 더 아지와 산책을 했다. 산책이 즐거워서였을까, 조금 나아진 나의 기분을 알아챈 것일까. 여우꼬리처럼 풍성한 아지의 꼬리가 기분 좋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지와 냥이에게 밥과 물, 간식을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 운전을 하며 평소에 하던 영어공부도 하지 않고 자기 계발 유튜브도 듣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산책 때 떠올랐던, '나의 어떠함을 받아들인다'라는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나.. 유리멘탈이었네, 소심하고 상처도 잘 받고 작은 일에도 신경 많이 쓰고, 안 그런 척하고 살았지만.. 맞지. 나 사실은 진짜 사소한 거에도 상처받고, 신경도 많이 쓰이고, 많이 힘들어하고.. 나 그런 사람.. 맞지 맞아. 뭐 어쩌겠어. 내가 그리 생겨먹은 걸. 유리멘탈이면 안 깨지게 더 조심하면 되지.. 유리가 깨지지 않고 뜨거운 불에서는 녹기도 하잖아. 녹아서 유리 공예하면 되지. 뭐 어때..'
조금씩 힘이 났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다 혼자 중얼거리다, 또 조금 호흡이 힘들어져서 창문을 활짝 열어 달리다가,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우주 씨는 상처가 없는 사람 같아'라고 했던 말도 떠올렸다.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척 잘 포장하고 살아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내가 정말 온전히 나로 살아온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르는군'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나를 여전히 모르는 건, 내가 나를 보지 않기 때문일까,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 날, 그날 이후 종종 그날의 그 대화가 떠올랐던 건 내가 상처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를 들어와 1년 동안 집요하게 괴롭히는 상사와의 회의 시간 이후엔 언제나 옥상에 올라가 루이스 헤이의 자기 사랑 확언들을 들으며 한참 동안 앉아 있어야 했던 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라도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명랑한 척, 밝은 척, 쿨한 척, 약하지 않은 척... 얼마나 많은 척들을 하며 내가 나를 속이고 살아온 걸까, 내 안의 진짜 내가 참고 참다가 '이젠 더 못해먹겠다'며 증상으로 발현된 공황장애조차 나는 부정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대표에게 보고하기 전날, 나는 보고자료를 전부 수정했다.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안 하고 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대신 팀 업무와는 비록 상관없지만 대표가 잘한다고 칭찬했던 업무들을 하겠다고 적었다. 또다시 대표의 막말을 듣고 그 짜증과 분노를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퇴사할 것도 아니니, 우선은 나의 유리멘탈이 깨지지 않도록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보고 당일, 나는 욕을 먹지도 않았고
‘일을 못한다, 월급이 아깝다'
는 막말은,
‘똑똑해서 말을 금방 알아먹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세요'
로 바뀌었다. 여전히 다른 직원들을 향한 분노와 짜증과 막말과 욕설이 두 시간 동안 난무했지만, 나는 마치 투명 보호막이라도 친 것처럼 나를 보호하려고 애썼다.
그날 퇴근을 하고 병원에 가 의사 선생님을 마주했다.
"한 주 어떠셨어요?"
상냥함과 친절함이 묻어 있었다.
"음.. 제가 되게 쎈 척하면서 살아왔는데요, 이제 안 그러려고요. 이제 그런 척 안 하고 유리멘탈이고, 상처도 잘 받고, 때론 우울하기도 하고 공황 증상도 있는 저를 받아들이려고요."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던 의사 선생님이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마스크로 전체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안경 너머의 눈에 잔잔한 웃음이 보였다. 그 웃음이 너무 다정해서 나는 하마터면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뭐 하러 쎈척해요? 안 그래도 돼요, 유리멘탈이면 어때요"
병원을 찾았던 첫날,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의사 선생님이 물었었다.
"우주님은 이렇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너무 속상해하실 거고, 친구들에게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평불만으로 들릴 것 같아 그래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가끔만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들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내가 세운 기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을 마뜩잖게 여기는 나 자신의 모습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짧으면 10분, 길면 20분.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은 이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나는, 공황장애도 오해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나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모르니,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힘든지,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 나를 다시 바라보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나와 화해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가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 자체로 온전하고 완전하다고 책에서 읽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은 '마음'까지 닿지 못했고, 여전히 현재의 나에 만족 못하고 '온전하고 완전한 내가 그려놓은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내가 보였다.
나는,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것이 느린 사람인지라, 이런 나를 아는지 삶은 참 재미있게도 여러 가지 방법들로 힌트를 주기도 했다. 병원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우연히 제목을 알게 되어 읽고 있는 책에 질병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P101. 우리 삶에 질병이 오게 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질병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온다. 첫째, 그것은 나를 깨어나게 하고 인생의 의미를 배우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P103. 건강을 통해서도 삶을 알아가지만 때로는 질병과 아픔을 통해서도 삶을 깨달아가야 하는 것이다.
… 너무 과도하게 일에 집착하거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우주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잠시 쉴 수 있도록 질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주는 언제나 삶의 중도와 균형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때 질병을 만들어낸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중도적으로 균형 있게 적절히 노력하고 집착 없이 일했다면 우주 법계는 굳이 질병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병을 통해 너무 크게 집착하지 말고, 너무 바삐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과 깨우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질병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삶에 잠시 제동을 걸고 쉼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
- 법상 스님 [날마다 해피엔딩] 중 -
결국 나에게 공황장애라는 질환으로 정신의학과를 찾게 했던 '그 일'은 그날 당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기쁨이 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신의 존재로만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있다'던 조던 피터슨의 말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어, 지혜를 구하고자 법상스님의 법문을 출퇴근길에 듣는다. 매주 한 번씩 정신의학과의 문을 열어 의사선생님과 마주 앉아 나의 얘기를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화해를 하고 때론 전보다 더 돈독하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나는 공황장애 덕분에, 공황장애에 대한 오해를 풀고 나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마구 엉킨 실뭉치 같던 마음이,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나를 바로 볼 용기가 필요했고 받아들일 큰 마음이 필요했고 유리멘탈이라 할지라도 쉽게 깨지지는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겠다는 용기가 필요했다. 삶이 주는 지혜 덕분에, 나는 이제야 나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오해가 풀려서 정말, 정말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