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기록
일 년 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지나고 나니 해는 시나브로 짧아지는 듯하다. 7월 중순을 넘어가니 해 뜨는 시간이 시간이 늦어져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가도 이젠 점점 어두움이 짙어진다. 해는 짧아지는데 더위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더워지는 듯하다. 내일모레로 다가오는 입추가 무색하게, 녹아버릴 듯한 날씨가 연일 지속된다.
더위가 심해질수록 아지의 산책시간은 짧아진다. 나도 땀이 줄줄 나는지라 아지의 짧은 산책이 반갑기도 하면서 먹는 양에 비해 활동량이 너무 적은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장마가 있고, 무더운 여름은 아지에겐 참으로 힘든 계절이다.
지난주에는 새벽 3시쯤 분주한 아지의 소리에 잠을 깼다. 엉덩이를 핥고 있는 그루밍 소리에 축축함이 배어 있다. 불을 켜고 보니 산책을 다녀와 물을 한가득 마신 녀석이 어쩌다 소변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내 침대 가까운 바닥에 녀석의 소변이 조금 튀어 있다. 내 방바닥에 타일이 깔려 있지 않아 자기 딴에는 피해를 최소화(?)해보고자 이쪽으로 온 걸까. 엄마에게 소변이 급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그걸 모르고 쿨쿨 잠만 잔 걸까. 어린아이들이 수박을 잔뜩 먹고 자다가 소변 실수를 한 것처럼.. 녀석은 아마 또 참고 참다가, 그루밍으로 해결해 보려다 나에게도 와 보려다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축축한 엉덩이를 닦아주고 바닥을 얼른 닦아놓고 후다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냥이처럼 수시로 밥 달라, 간식 달라 조르면 좋으련만 조르지 않는 녀석이 안쓰럽기만 하다. sns에 보면 볼 일을 보겠다고 의사 표현을 하는 반려견들 때문에 폭우에도 나가고 새벽에도 산책을 나간다는데, 나의 아지는 내가 나가자고 할 때 나가는 편이다. 녀석은 그냥 참고 또 참는다. 아마 조금은 자기 의사를 표현을 할 테지만 무딘 애미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좀 넘어 산책을 한번 하고, 출근 전 5시 20분에 다시 한 번 산책을 했다. 함께 한 지 6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지의 표현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또 밀려온다. 티 나게 조르지 않는 아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지의 행동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해 주는 것뿐이기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아지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좀 더 이른 시간 새벽 산책을 나간다.
어두움이 짙은 시간, 아지의 몸 줄 LED 불빛에 기대어 동네를 돌면서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들과, 그렇게 커버린 어른들을 생각한다. 뭐가 맛있어요, 이게 가지고 싶어요, 어디 가고 싶어요! 예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조카가 예뻐 보였던 이유는 그렇지 못한 어른들의 짠한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아지를 데리고 온 후 처음엔 몰라서, 나중엔 너무 바빠서 더 섬세하게 돌봐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또 나아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눈치 보더라도, 조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너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