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바로크 화가의 질감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장르화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이 장르화는 종교나 역사, 신화와 관련된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렸다.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Gerard ter Borch, 1617-1681)는 특히 '여성'을 주요 소재로 하는 장르화를 그렸다. 테르 보르흐 장르화에서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 입고 있는 사틴 드레스의 표현이다. 특히 <아버지의 훈계>로 전해진 <정중한 대화Gallant Conversation>라는 작품에서는 보란 듯이 뒷모습을 하고 있는 여성의 은빛 드레스가 그 질감과 주름까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실 이 그림은 그림 속 세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그 주제와 관련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그림에는 사틴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과 포도주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여인, 그리고 한 손으로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서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한 남성이 등장한다. 이들이 자리한 방의 뒤편에는 붉은 커튼으로 둘러 쌓인 침대가 놓여있고, 방 한편에는 촛대, 거울, 빗 등이 놓인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아름다운 드레스의 묘사와는 달리 이 그림 속 여성은 매춘여성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여성은 포주로, 앉아 있는 남성을 이들 여성과 거래를 하고 있는 고객으로 해석된다. 사실 네덜란드 회화에서 도덕적 교훈을 목적으로 한 매춘 거래 장면을 묘사한 시각 이미지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테르 보르흐의 <정중한 대화>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전통적인 그림과는 달리 뒷모습을 한 여성을 통해 굉장히 모호하게 표현되었다. 기존의 이미지들은 '선'과 대비되는 '악'의 가치를 드러낸 '여성'을 통해 이미지의 의도를 분명하게 제시했다면, 테르 보르흐의 여성은 뒷모습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보이며 서있어 모호성을 증폭시킨다.
다른 듯하면서도 조금 비슷한 구성으로 <The Glass of Lemonade> 작품도 있다. 이 작품 속 여성의 모습 역시 악덕의 모습으로 그려졌다기보다는 그저 섬세하게 묘사된 젊은 여성의 사틴 드레스가 더 관람자의 시선을 자극한다.
아름답게 묘사된 테르 보르흐의 드레스의 질감 표현들을 보면 어쩌면 작가가 표현해보고 싶었던 드레스의 질감을 전통적인 주제와 인물 구성을 가져와 시도해 본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