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시감이 들던 그곳은, 과거와 닮아 있었다.
혀 끝에서 오랫동안 맴돌던 글 앓이를 끝낸 밤에,
나는 긴 꿈을 꿨다.
하얗고 조용한 세상, 승합차 한 대가
절벽 가장자리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은
낭떠러지 너머 회색 갯벌 위로 조용히 내리 앉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가장 낮은 소리.
그 둔탁한 울림만으로 이름 모를 새가
앨버트로스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죽기 전까지 평생 땅에 내려앉지 않고 날아다닌다던, 그 앨버트로스.
그의 커다란 날개가 눅눅이 달라붙은
새까만 진흙에 짓이겨져 있었다.
윤기가 사라진 깃털, 깨진 유리 같은 눈.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앨버트로스를 집어삼킬 파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적막하고 고요할 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生.
하얀 눈이 내린 바닷길은 기암절벽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 아득히 솟은 모래성이 있었다.
거대한 흰개미집을 닮은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들 말하지만,
모래와 바람에 남은 희미한 온기로 짐작할 뿐이었다.
인기척도,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는—
거처도, 무덤도 아닌 그 집은
살아 있으면서도 오래전 숨을 멈춘 것처럼
그저 거기 몽롱하게 있었다.
스치는 풍경 사이로,
전속력으로 따라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아들.
이상했다. 그들은 추위도, 가파른 경사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세우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불현듯, 열린 문으로 한 아이가 순식간에 들어와
조종간을 낚아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그들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그때처럼 차는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릴 터였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숨이 턱 끝까지 조여왔고,
손은 부서질 듯 떨렸지만 황급히 모든 문을 잠갔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벌써 창 틈으로 몸을
비집어 넣고 있었다. 작은 손, 간절한 눈빛.
이번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임과 죄책감이 온몸을 차갑게 식혔다.
그러나 차가 흔들리는 순간,
짙은 안개 속으로 추락하는 짧은 미래가 스쳤다.
온 힘을 다해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여자가 나를 향한 집착을 거두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돌아섰다. 감정 하나 없는 얼굴로.
마치 처음부터 나를 원한 적도, 내친 적도 없다는 듯이.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이 연극 같았다.
나는 높은 무대에 서있는 죄인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그제야 뒤따라오던 다른 일행이 떠올랐다.
늘 함께 걸었는데, 오늘따라 멀찍이 간격을 두고 왔다.
뒤돌아 뛰어가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들이
영 불안했다. 서둘러 전화 다이얼을 눌렀다.
그러나 수화음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삭제된 번호입니다. “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안내음은 수신인이 죽었을 때 들리는 소리이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또. 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더 이상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팍-
눈이 떠졌다.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