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사계절 중 언제가 가장 좋냐고 물어오면 봄과 여름사이 그쯤을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완연한 따스함과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다 라일락향까지 더해지는 오월은 그 누구라도 함께라면 완벽함 그 자체였다. 그 좋았던 오월은 직업이 없어진 이후 열두 달 중 제일 웃지 못하는 달이 되어 버렸다.
어린이날은 아이들 소원성취에 힘을 실어줘야 했고 어버이날은 평소에 다하지 못한 효를 조금이나마 보여야 하는 역할이 남아 있었다. 양쪽 어른들이 딱히 바라시지는 않지만 며느리이자 장녀로 마냥 맘 편하게 보내는 오월은 아니었다. 얼추 아이들의 마음은 사로잡아 어린이날은 무사히 보냈으니 이번엔 시부모님 입맛에 맞는 식당을 예약해 온 가족이 훈훈하게 식사를 마치면 꽃내음 가득한 좋은 날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머리를 굴려 보았다.
자주 나가지 않아 가족행사는 항상 외곽으로 나갔는데 이번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너무 성의가 없
는 건 아닐까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고 때마침 장소가 가까워 가족 모두 잘 되었다며 좋아했다. 칼칼한 해물찜에 뜨끈한 칼국수까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만족하는 식사자리는 아이들 학교생활 이야기와 서로 건강을 챙기며 따뜻한 가족애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식사 자리가 얼추 마무리되어 가며 근처 디저트카페 어디가 좋을지 찾아보는 찰나 형님의 레이더에 딱 걸렸다. 몇 년간 카페를 운영했던 나에게 가게를 닫고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질문이 들어왔다. 간간히 쿠팡 알바를 하는 걸 아실 텐데 왜 물어보실까 머리가 쭈뼛거렸다. 명확하게 정해진 일이 아니라 애써 쿠팡 알바에 추가로 원예수업이 들어오면 나간다고 보태어 말씀드렸다. 거기까지였으면 딱 좋았을 텐데 한번 터져버리 입은 올 초 도서관에서 재능기부로 강의를 해봤더니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야기하는 게 적성에 맞는 것도 같아서 이런 일이 있으면 자주 하고 싶다는 말도 주절주절 나왔다.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수습이 안 되는 모양 빠지는 이 상황을 온 가족이 듣고 피할 길 없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급작스럽게 형님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올케 메인 직업이 뭐야?라는 질문엔 정수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간간히 식물에세이를 쓰며 카카오선물처럼 가볍게 들어오는 돈과 쿠팡알바, 원예보조까지 애들 코 묻은 잔잔한 금액의 일들은 작가도 아니고 강사도 아닌 어느 곳에 소속되지 못하는 떠도는 나그네 같은 직업이었다.
훅 들어온 질문에 섭섭할 법도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그것을 수긍하며 조용히 두 눈만 꿈벅거렸다. 올케는 말도 잘하고 민원 처리도 잘할 거 같은데 그런 거 말고 학교 행정직 같은 거 알아봐 내가 전에도 말했는데 진지하게 찾아보고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이참에 한번 도전해 보도록 해. 네 찾아볼게요 애써 웃으며 식사 자리를 마무리했고 그 후 커피와 빵은 어디로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강력한 질문과 따스한 조언이 맴돌며 예전 같으면 참 뾰족하게 받았을 텐데 둘째까지 학교에 입학한 마당에 틀린 말도 아니라 안정적인 메인 직업이 절실한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사이드메뉴 같은 직업들만 집어 먹을 순 없는데 머릿속은 혼란했고 당장에 목에 거는 사원증은 나에게 발급해 줄 곳은 없기에 착잡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장생활도 해봤고 창업도 깨끗하게 말아먹었지만 다시 한번 직업을 찾고 싶은 심정은 강렬했으나 이제껏 내가 했던 경력은 내세울 만한 것 없이 초라했다. 머릿속은 온통 메인이 될 직업을 빨리 찾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찾고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닌 급작스럽게 형님이 정해준 직업을 향해 찾아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