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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써린 Dec 05. 2022

월드컵에서 한류를 느끼다.

동남아의 한류


해외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사소한 문화도 다른 곳에서 익숙한 한국에 대해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여행이라면 이방인이 된 것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생활이라면 무엇 하나 쉽지 않다. 무엇을 해도 서투르다.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 걸음마 떼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달까. 어릴 때는 뚝딱대는 내 모습이 괜찮았는데, 40대인 지금은 모든 일을 프로처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같은 아시아지만 기후, 종교, 문화, 언어, 하다 못해 차의 통행 방향마저도 한국과 다르다. 수십 년 전 주재원 생활을 하거나 이민을 온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적응을 했을까 싶다. 아무튼 뚝딱대는 와중 감사한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기술한류다.


포털에서 한국인 커뮤니티를 검색하여 얻는 정보와 번역 어플 덕분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첫 한 달은 언제 번역기를 돌려야 할지 몰라 비밀번호 누르는 시간을 아끼려고 휴대폰을 잠그지도 못했다. 인터넷 검색 찬스는 해외에 난데없이 떨어진 이방인에겐 축복이다.


뉴스로만 보던 한류, 고마워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적응을 돕는 것은 단연 한류다. 낯선 이곳에서 한국의 향기를 꾸준히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한국과 닮은 점이 없는 도시를 차로 달리는데, 집채만 한 광고판에 한국 연예인들이 보였다. 한국 제품의 진출이 아닌 현지 브랜드의 모델이구나! 한류를 체감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선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내가 왜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놓지 않았을까. 이 잘생긴 청년들을 지금이라도 공부해놔야지 마음을 먹었다.


광고판 사진만으로 감사할 것은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한국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 그들과 내가 한국 연예인을 안다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 것이기도 하고.


인니어를 아직 모르지만 인터넷 쇼핑은 생존 필수므로, 한국 분들의 지도편달을 받아 어플을 설치했다. 2억 7천만 명의 인도네시아 인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쇼핑 어플을 켰는데, BTS가 첫 화면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흐뭇하면서 즐겁다. 번역기를 돌리면서 쇼핑하는 건 고된 일이었지만, 슈가와 진이 날 응원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 어플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져 내친김에 결제까지 성공해냈다.

출처 : idntimes.com / tokopedia.com


할랄 소주를 아시나요?


자카르타는 한국인이 꽤 많이 거주하고 있어 한국 마트도 곳곳에 있다. 한국 마트는 한국 전문점에 가깝기 때문에 현지 마트도 자주 이용하게 되는데, 현지 마트에 한국 물건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한국인 고객이 그렇게 많은가? 하고 생각했는데 현지인이 한국의 대표 매운 라면을 카트에 마구 싣는 것이 보였다. 라면, 과자, 김치, 단무지, 돼지고기가 들지 않은 각종 냉동식품, 장류나 국수 같은 식재료 등등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제품이 다양하다. 심지어 한 박스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영천포도’도 있다. 물론, 다른 나라 수입 식료품도 많고 그 안에 한국 제품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류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한국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낯선 이곳의 사람들이 한국 제품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인니 친구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본 음식은 다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무슬림이 90% 가까운 나라이기에 술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와중에 무알콜 할랄 소주를 판다니 말 다했다. 무알콜 맥주야 그럭저럭 비슷한 맛의 음료수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소주를 대체 어떻게 흉내 냈을까. 먹어보진 못했는데 그냥 향긋하게 만든 음료수인 듯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먹는 소주가 궁금한 인니인들을 위한 초록병 마케팅. 한류가 이 정도다.


출처 : 인도네시아경제신문 pagi.co.id


생소한 나라에서 익숙함을 자주 느끼게 해 준 한류가 적응의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어 달 후 여유가 약간 생겼을 때엔 이제 숨은 한국 찾기가 일상이 되었다. 현지 제품에 한글을 적어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다들 신기해할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도 제품에 영어를 써놓는 것이 고급진 마케팅이었다. 이곳에서도 현지의 제품에 ‘한국 한 방울’을 묻혀놓는 마케팅이 흔하다. 주방세제의 패키지에 뜬금없이 한글로 ‘딸기향’을 적는다든지, 버거 브랜드의 대형 광고판에 한글로 ‘대박’을 적는다든지. 어떤 물건이든 ‘Korean standard’를 많이 어필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많이 많이 흥해서 한국 제품이 어떤 나라의 제품보다도 가치 있고 매력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화장품 가게나 드럭스토어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만날 수 있고,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에서 ‘Korea Festival’ 이라며 한복을 곱게 입은 인니인 친구들이 안내를 해주었다. 낯설고 또 낯선 이곳에서 가끔은 여기가  지척이라는 기분이 들게 해주는 일들이다.




쏜을 외치던 인니 친구들



최근에는 월드컵 시즌이 오면서 국내 중계를 보지 못해 무척 아쉽다. 한국 중계 해설을 못 듣는다면 스크린이라도 큰 곳에서 볼까 하여 월드컵 경기를 내내 틀고 있는 근처 쇼핑몰 대형 스크린을 찾아갔다. 그런데 세 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자리가 없었다. 응원하러 온 한국 분들이 많긴 했지만 자리를 꽉 채울 정도는 아니었다. 경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곧 음식만 먹고 가겠지? 하고 서성였는데, 인니인들이 점점 많아질 뿐이었다. 경기 시작이 다 되어서 좋은 자리에 앉기는 틀렸구나, 하고 체념하는데 함성이 들려왔다.



쏜~~~~~


앞, 뒤, 옆자리에 앉은 성별도, 연령도 다양한 인니인들이 외치는 함성이었다. 아, 이 친구들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여기저기 모두 한류의 흔적이지만, ‘SON’은 한류의 끝판왕이다. 까짓 껏 서서 봐도 되었다. 아무리 머나먼 이국땅이어도 응원은 많이 할수록 좋은 것 아니겠나? 아직 16강 진출은 확실하지 않지만 아직 3차전이 남아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이번엔 네 시간 일찍 나가서, 쏘니를 응원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눈인사라도 해주고, 다른 선수들 정보도 흘려야겠다. ‘좋아해 봐, 코리아팀을’. 타국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 우리 국가대표 파이팅이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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