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일일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곳 Aug 27. 2024

끝까지 헤엄칠 곳을 찾아서

무기력함 극복 프로젝트 : 一日 一筆

27.08.2024

一日 一筆 



누구나 꿈이 있다. 모두에게나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여러 상황들로 인해 대부분의 경우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고, 좋아하는 일과는 멀어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건 굉장히 럭키한 거겠지.


나는 럭키한 쪽에 속했다. 베트남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에 당장 뛰어들 스펙과 시기 등등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다.


베트남에서 찾은 꿈은 '케이팝 제작'이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케이팝시장이 커졌고, 여러 인력 풀이 열렸다. 4년 넘게 쌓은 커리어는 마케팅과 관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남겼던 음악 분석 글들은 내 관심의 증거가 되어주었다. 참 운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대형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할 수 있었다.


정말 신세계였다. 카메라 뒤 수많은 스탭들 중 한 명이 되어 현장을 뛰어다니고, 아티스트들과 소통하고, 팬들의 니즈를 구현해 내는 일은 내가 꿈꿔왔던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하인드를 알게 되고, 신비스러운 이 시장의 파도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파도는 거셌다. '원래 사회생활은 이런 거야'라고 위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파도들이 날 몰아붙였다. 그곳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자유가 없었다. 퇴근할 자유, 밥 먹을 자유, 잠을 잘 자유도 없었다.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어 다니고, 책상에는 식사를 대신하는 단백질 셰이크만 늘어갔다. 새벽 2시에 퇴근해 새벽 3시에 다시 출근하는 일상도 너무나 당연해졌다. 불합리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할 에너지도, 가족들의 얼굴 볼 시간도.... '나'를 지킬 힘이 단 1도 남아있지 않았다. 


숨 쉴 틈 없이 몰려오는 파도 속에서 나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양손과 발에 무거운 추를 달고 가라앉았다. 


매일 비상계단에 앉아 울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을까?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없이 사람을 말려버리는 이 시스템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10년 넘게 일한 사수를 보니 답이 나왔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던 일'이라는 위로로 나를 묶어놨던 그 무거운 추들을 내 손으로 끊어냈다. 나는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간신히 기어 나왔다. 


퇴사의 과정까지 가스라이팅이 계속되었다. 25살인 나에게,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냐'라고 비웃는 사수가 마지막쯤에는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뭘 하든 당신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게 살겠죠.'라고 받아쳤야 했는데 참 아쉽다.


이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있고, 수많은 직업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것들이 체력적으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고 마음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보람을 주고, 경제적인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세상에는 100% 딱 만족할 직업은 없다. 무조건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한다.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내어놓을 건지 결정하는 게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 '주일 예배', '정의', '선한 영향력'의 가치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들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었을 때 일에 대한 보람과 재미, 나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새로운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또다시 몰려올 파도에 대한 두려움이 분명 있다. 그러나 설령 이 새로운 바다가 그러한 파도를 만들어 나를 덮칠지라도 나는 다시 나와 헤엄칠 방법을 안다. 나에게는 구명조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끝까지 헤엄칠 곳을 찾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너짐 가운데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